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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등록 2021-03-18 04:59수정 2021-03-18 20:26

내 짝꿍은 인권 변호사
그가 펑펑 운 날은
변희수 하사가 생을 마감한 날
“정말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
클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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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실존주의자들이 오랫동안 빠져든 실존주의의 마네킹이다. 카뮈는 ‘나는 진실로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뫼르소를 세운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 현실이 충돌하면서 황폐하게 말라버린 사막 같은 공허한 내면으로 뫼르소를 점차 몰아간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뫼르소에게 시대가 받아들일 만한 통념적인 모습을 갖추고 사회에 ‘정상인’으로 편입하라는 암묵적인 요구를 한다. 그런 요구를 거절하며 무감각하게 반응하던 뫼르소는 모종의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뫼르소는 되레 자신의 삶을 가장 또렷한 형태의 행복으로 자각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종교, 인간이 만든 규칙과 언어를 모두 헛된 것으로 여겼던 뫼르소가 끝내 세상을 벗어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으로써만 온전할 수 있는 영혼이라는 건, 얼마나 참혹한 안식일까.

나는 교제하는 연인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짝꿍이라는 표현을 쓴다. 애인이라는 지칭은 왠지 모르게 느끼하고, 여자친구라는 지칭은 어쩐지 가볍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우자를 짝꿍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는 그때부터 따라 쓰기 시작했다. 아무튼, 어느 날 대화를 나누던 중에 짝꿍이 대뜸 눈물을 보였다. 몹시도 당황했다. 짝꿍은 대체로 느릿하고 예민한 나와는 다르게 평상시 감정 상태가 주로 즐거움과 화남,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짝꿍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은 굉장히 심각한 상황임을 드러내는 표현인 것이다. 짝꿍과 나는 어떤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짝꿍은 공익활동가를 겸하는 변호사다. 변호사라는 직군의 업무 강도가 나로서는 가히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인데, 그 와중에도 짝꿍은 잠을 줄이고 휴일을 반납해가며 각종 인권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시인과 변호사라는 부조화한 조화에 대해서는 아마 다른 기회에 각별하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다. 연관성이 꽤 동떨어진 직업을 가진 우리는 구사하는 언어도 다르다. 그런 탓에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주 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사회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뻗어 나가는데, 그날 짝꿍은 내게 ‘그’의 투쟁과 의미에 대해 공들여 설명하던 끝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신성한 날이라 칭하며 “대한민국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생일”이라고 말했던 삼일절이 이틀 지난 3월3일, 변희수 하사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육군부대 하사로 근무하며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인 그의 이야기로 많은 곳이 소란스러웠다. ‘시스젠더 헤테로’(cisgendered and heterosexual·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심리적 성이 일치하는) 남성인 나는 그가 어떤 삶을 겪어 냈는지 차마 알지 못한다. 공감이 대상의 처지와 감정에 대한 상상과 몰입을 통해 발휘되는 능력이라면, 나는 차마 그가 겪었어야 할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는 본인의 꿈과 신념을 실천하고 싶었던 조직에서 성실하게 존속하고자 했다. 자신이 타고 태어난 영혼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군으로부터 ‘심신장애’라는 판정을 받고 강제 전역이라는 부당한 결정을 통보받았다.

‘장애’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다. 심신장애는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육체적 기능 저하 혹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정신의 불안정성이 발생했을 때 내려지는 판정이다. 그가 판정받은 ‘장애’의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육체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심각하게 근무 능력 저하를 일으켰으며, 정신의 어떤 발현이 조직에 그토록 손해를 끼친 것인가.

나는 영혼의 모양과 육체의 모양이 달라서 발생하는 삶의 결핍과 절망, 고통을 알지 못한다. 사람이 계절과 날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나면서 주어진 몸과 정신도 우리가 고를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이의 ‘반대’를 경험할 때의 속수무책과 아연함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그들의 ‘자유’를 악용해서 나의 영혼을 업신여길 때,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강철로 만든 괴물처럼 느껴질 때의 공포에 대해서, 차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반대’와 ‘자유’는 함께 사용하지 말아야 할 단어라는 것은 안다. 자유의 용도는 저울이 아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저울 위에 올려져 결국 튕겨 나간 자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서 다치지 않도록, 저울 주위에 둘러치는 안전그물 같은 것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끝내 세상을 사랑할 수 없었다. 뫼르소는 사회와 타인과 끊임없이 불화하면서 냉소와 죽음으로써 세상을 영원히 이탈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다가 문득, 소설 속 세상은 뫼르소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세상의 불합리한 규정을 거부하면서, 시종일관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실존을 고집하려는 자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끝내 그럴 수 있을까.

변희수 하사는 그러나 세상을 사랑했던 것 같다. 세상보다 먼저 세상을 사랑했던 것 같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고, 동료를 신뢰했으며, 세상을 이해할 각오와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진 사랑과 신뢰와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행복의 존속이, 내가 그에게서 뺏은 줄도 모르고 뺏어온 것만 같다.

이 글은 꽤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썼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랜 전언을 상기하고서라도, 시인의 언어는 선언이거나 구호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을 문학 수업 시절에 누누이 들어왔다. 차라리 모두 외면하고 밝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으려나. 그러나 짝꿍의 눈물이 그가 불쌍해서이거나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죄책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쯤, 나는 건넬 수 있는 손수건을 갖고 싶었다.

가수 이소라의 노래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이 가사를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울고 있을 사람들에게 희고 작은 손수건을 대신해서 건네고 싶다. 그리고 그 귀퉁이에 노란 국화 꽃잎을 수놓듯, 덧붙이고 싶다. 미안하다고. 나 역시도 당신의 아픈 세상의 일부여서, 정말 미안하다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말하지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이소라 곡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최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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