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제삿밥은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전통문화가 오롯이 녹아있는 밥상이다. 오백년 조선의 확고한 통치이념이던 유교는 세상 어느 종교보다 제례 문화가 발달했다.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란 유교식 제례 문화의 산물이다. 지금은 지역 특산 음식으로 남았다.
헛제삿밥의 유래는 서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안동에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많은 서원이 있다. 서원이란 요즘으로 따지자면 사립학교(반대로 향교는 공립학교다)다. 이름난 서원에는 많은 양반의 자제들이 유학을 왔다. 혈기방장한 이들은 제례를 연습해야 한다는 핑계로 관노에게 제사상을 차리게 했는데 사실은 맛난 음식을 먹고 싶었던 까닭이다. 이것이 헛제삿밥의 유래가 됐단 이야기다.
한편 명문가가 즐비한 안동에서 양반들이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먹고 싶었지만 상대적으로 궁핍한 민초들의 눈을 의식해야 했고, 이에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헛소문을 내고 상을 차렸다는 말도 있다.
유래야 어쨌든 헛제삿밥은 정식 제례의 원칙에 따라 고기와 채소, 생선 등 제철 고급 식재료를 차린다. 나물이며 산적 등 손도 많이 간다. 품위도 서렸지만 그보다 맛과 영양가가 좋다. 위엄보단 영양이 깃든 음식이다.
유림들이 허제반(虛祭飯)이라 칭하며 즐겨온 안동 헛제삿밥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제사상과 똑같은 구성이다. 밥, 다시마 뭇국, 간고등어, 육전(또는 산적), 상어, 각종 전유어(동태포, 두부, 다시마, 배춧잎 등), 각종 나물(고사리, 도라지, 숙주, 시금치, 무나물 등), 안동식혜, 과일 등을 올린다. 3적 3탕 3채를 기본으로 하는 정식 제례 원칙을 따른다.
특히 고기와 대파를 한 꼬챙이에 꿴 산적은 요즘 보기 드문 전통식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산적(散炙)’이라 함은 게맛살과 어묵, 햄을 꿴 것이 보통이라, 외국인도 한국 전통식 메뉴라 하면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산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훌륭하다. 구운 대파의 향긋함이 숯불에 구워낸 고기에 배어 그 조화가 아주 좋다.
헛제삿밥은 한상 차림으로도 먹지만 보통은 이 반찬들을 밥에 올려 비벼 먹는다. 해동 죽지 등 문헌에 따르면 헛제삿밥과 비빔밥(骨董飯)은 그 뿌리가 같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양반이 많이 살던 진주에도 헛제삿밥과 비빔밥이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안동호 월영교 인근에는 헛제삿밥을 주로 취급하는 식당이 많다. 안동호 호반에 있는 ‘까치구멍집’은 제대로 격식을 차린 헛제삿밥을 파는 집이다. 오신채를 적게 쓰고 색상을 맞추는 등 정도를 지켰다. 탕국을 비롯해 상어, 산적, 나물 채반, 생선구이, 떡, 명태전 등을 차려낸다. 원래도 푸짐하지만 여기다 안동 간고등어와 안동소주를 함께 곁들이면 더욱 좋다. 마지막으론 안동 전통 식혜를 낸다. 무와 생강을 써서 매콤 새콤한 맛을 내는 식혜는 디저트라기보다 소화제다. 식혜를 포함하면 천원을 더 받는다. (까치구멍집 헛제삿밥 1인분 1만원. 경북 안동시 석주로 203. 054-855-1056)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