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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여름날 몸 허할 때 찾는 진한 한 그릇

등록 2021-06-18 10:18수정 2021-06-18 17:54

소머리국밥. 사진 이우석 제공
소머리국밥. 사진 이우석 제공

지금이야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 소는 귀했다. 농가에 소중한 소는 잡지 못하게 국명으로 다스렸다. 그나마 걷지 못하는 소를 잡게 돼도 주요 고기 부위는 아무나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머리는 예외였다. 선지, 소꼬리, 도가니(무릎연골), 발, 수구레(진피와 가죽 사이 부위), 머리뼈 등은 평민도 입에 댈 수 있었다. 양이 적으니 무조건 고아서 국물에 밥을 말았다. 소머리국밥의 탄생이다.

소머리국밥은 든든하고 감칠맛이 좋았다. 고아서 뼈를 추려내면 예상보다 많은 고기가 나왔다. 콜라젠도 많아 입에 짝짝 붙었다. 농가 보양식 중 으뜸이었다. 원래는 소대가리라 해야 맞는데 소는 친숙하니 소머리라 불렀다. 예전에 마가린과 빵을 만들던 식품회사 중 소머리표(서울식품)도 있었다. 그만큼 소는 종요롭고 친숙한 가축이었다.

농경사회였으니 한반도 전역에 비슷한 음식이 존재했다. 지금도 그렇다. 소머리국밥은 핏물을 빼 잡내를 잘 잡아내고 거품을 걷어내며 진하게 우려내야 맛있다. 전국 어디나 똑같은 사정이다. 다만 지역에 따라 고명이나 양념이 조금씩 달랐다. 소머리를 우린 국물에는 영양가 좋은 아미노산이 많아 여름날 몸이 허할 때 한 뚝배기 비우면 몸이 거뜬하니 좋다.

포항에 유명한 소머리국밥집이 있다. 거대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에 몰려있어 상인도 손님도 한 그릇씩 먹고 간다. 이중 장기식당은 포항시민들에게 인기 좋은 노포다. 1952년 개업했으니 벌써 60년이다. 진한 국물맛이 일품인 장기식당은 언제 가도 성업 중이다. 특히 아침 새 국물을 마시러 온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에서는 소머리 곰탕이란 이름으로 곰탕과 수육, 메뉴라곤 딱 두 가지만 취급한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밥을 토렴하고 소 대가리의 다양한 부위 고기를 썰어 넣고 뚝배기에 담아 상에 낸다.

혀에 짝짝 붙는 머릿살, 부드럽고 고소한 혀 밑, 투실한 볼살, 진한 감칠맛을 내는 뼛속 살 등이 골고루 들었다. 숟가락으로 저어보면 토렴한 밥알이 고깃점을 발판삼고 뽀얀 국물을 무대 삼아 슬슬 돌아다닌다. 한 번에 고기까지 충분히 퍼서 입안에 옮기면 입안에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진다. 뜨겁고 구수한 국물이 목젖을 타고 흘러든다. 소머리의 맛과 영양이 고스란히 몸속에 전해지는 순간이다. 적당히 기름지고 충분히 담백한 식도락. 이 맛에 갯가까지 와서 소머리를 찾는 모양이다.

‘이우석의 밥방곡곡’ 첫 꼭지가 포항(물회)이었는데 다시 돌고돌아 포항에서 뜨끈한 국밥으로 맺게 됩니다. 그동안 밥방곡곡과 겸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장기식당: 포항시 북구 죽도시장3길 9-12. 소머리곰탕 1만원, 대(大)는 1만3000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그동안 이우석의 밥방곡곡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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