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광 북한 외무성 본부대사(전 나미비아 대사)와 리동일 군축과장이 지난 23일 태국 푸껫 셰러턴호텔에서 열린 제16차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 쏙] 호기심 플러스
아세안지역포럼때 각국 취재진과 숨바꼭질
‘미 예약석’에서 기자회견 하려다 우왕좌왕
아세안지역포럼때 각국 취재진과 숨바꼭질
‘미 예약석’에서 기자회견 하려다 우왕좌왕
“북한 대표단을 찾아라.” 지난 21~23일 타이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을 만나기 위해 각국 취재진들은 보물찾기를 하듯 대표단의 행선지마다 길목을 지키고 기다렸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이후, 북한 대표단을 공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북한 대표단은 마주치기조차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마주쳐도 취재진들에게 입을 꾹 닫았다. 외교장관 회의였지만 북한은 박의춘 외무상 대신, 차관급인 박근광 본부대사(전 나미비아 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5명의 대표단을 회의에 파견했고, 이들 대표단도 이틀 동안은 언론 노출을 꺼렸다. 북한 대표단과 취재진의 숨바꼭질은, 북한 대표단이 베이징과 방콕을 거쳐 21일 오후 5시20분(현지시각) 푸껫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예고된’ 것처럼 보였다. 북한 대표단은 주최국인 타이가 비행기 계류장에 마련한 보안차량을 타고 빠져나가 버렸다. 계류장에 접근할 수 없어 출국장에서 북한 대표단을 기다리던 취재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북한이 대화에 나설 생각이 있는지, 미국과 접촉 계획이 있는지 등 나름대로 질문 목록까지 준비했던 취재진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 대표단의 숙소인 라구나 홀리데이 리조트 앞에서도 한국과 일본 등의 취재진이 진을 치며 북쪽 대표단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북쪽 대표단은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리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을 비롯한 일부 실무직원들이 이따금 오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지만, 타이 정부가 배치한 경호원들의 제지로 취재진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단장 격인 박근광 대사는 푸껫 도착 직후 이번 아세안지역포럼의 의장국인 타이의 카싯 피롬야 외무장관과 만나려고 회의장인 셰러턴 호텔에 잠깐 들른 것 외에는 회의가 열린 23일 전까지 숙소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북쪽 대표단이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대변인 격인 리흥식 외무성 국제기구담당국장이 22일 밤 아세안지역포럼 갈라 디너(만찬)가 열린 트리사라 호텔에서 “내일 오전 회의가 끝나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게 거의 유일했다. 23일 아세안지역포럼 오전회의가 끝나고 오후 1시40분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한 리흥식 국장이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호텔 커피숍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던 북쪽 대표단은 이언 켈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저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예약’을 해놨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 직원과 보안요원들이 이미 낮 12시(현지시각)께부터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해 보안 점검을 마친 터였다.
리흥식 국장은 30m 정도 떨어진 호텔 정문 쪽 간이 기자회견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북한 대표단이 숙소로 철수하는 것으로 착각해 취재진 접근을 막는 타이 보안요원들과 40~50명의 취재진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취재진의 애를 태우던 북한 대표단은 기자회견장에서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리 국장은 “대화를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차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대화 의지를 밝힌 공식적인 발언이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