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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박치기왕 사라지자 불사조가 다가왔다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15]

등록 2022-07-05 10:56수정 2022-07-06 02:05

1982년 서울 종로구 북촌 골목길에서 오비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형과 함께 사진을 찍은 유병선씨(왼쪽). 곱슬머리가 눈에 띈다. 본인 제공
1982년 서울 종로구 북촌 골목길에서 오비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형과 함께 사진을 찍은 유병선씨(왼쪽). 곱슬머리가 눈에 띈다. 본인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1982년, 컬러 티브이(TV)가 귀하던 시절, 나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 전까지는 두살 위 형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모여 앉아 흑백 티브이 속에서 김일 선수가 박치기로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프로레슬링을 흥미롭게 봐오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티브이에서 김일 선수를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때 ‘짠’ 하고 나타난 게 프로야구였다. 레슬링보다 경기 규칙이 한층 복잡해 보이면서도, 많은 선수가 나와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프로야구! 경기 중계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포수의 미트에 스트라이크가 꽂힐 때마다 괴성을 지르는 주심이었다.

도대체 소리는 왜 지르는 건지,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과장된 몸짓으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는 게 너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고는 했다. 타자에겐 미안하지만, 그 모습이 또 보고 싶어서 한 번만 더 헛스윙하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주심이 내지르는 소리가 “스트라이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섯살 위 옆집 형 덕분이었던 것 같다.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심판. 연합뉴스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심판. 연합뉴스

그렇게 점점 야구를 알아가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오비(OB) 베어스 어린이회원에 가입하게 됐다. 회원 신청서에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칸이 있었다. 야구 규칙도 이제 막 어렴풋이 알아가던, 프로야구가 뭔지도 몰랐던 8살 꼬마가 선수 이름이나 성적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몇몇 인상적인 선수들은 있었다. 멋진 구레나룻과 수염을 기른 채 펑펑 홈런을 날리던 김우열 선수, 마치 체조 선수처럼 긴 다리를 쭉 뻗어서 다른 팀 1루수보다 반 박자 빠르게 송구 되는 공을 잡아내 전력 질주하는 타자들을 아슬아슬하게 아웃시키던 신경식 선수. 티브이로만 봤지만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이 멋쟁이들 사이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바로 투수 박철순이었다. 회원 가입을 할 때는 시즌 초반이었기 때문에 22연승이라는 그의 불멸의 대기록이 세워지기 전이었다. 팀을 초대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끈 우승 주역이 되고, 선수로서 생명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부상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은 건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오비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이끈 박철순. &lt;한겨레&gt; 자료사진
오비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이끈 박철순. <한겨레> 자료사진

내가 박철순 선수를 좋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의 곱슬머리 때문이었다. 박철순 선수는 마운드에서 타자에게 공을 던질 때마다 눌러 쓴 모자 밑으로 풍성하고 멋진 곱슬머리를 휘날렸다. 어릴 적부터 마치 파마를 한 것 같은 곱슬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내게는 그 하나만으로도 박철순 선수가 최고였고, 그래서 박철순 선수가 등판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린이회원이 된 다음 해(1983년) 1월. 내 생일에 원년 우승과 함께 프로 원년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거머쥔 박철순 선수 사인 엽서를 받았을 때는 진짜 입이 함지박만큼 커졌다. 사인 엽서를 가슴에 품고 얼마나 좋아라 했는지….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이후 여러 선수가 드라마 같은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며 한국 프로야구 40년을 수놓았다. 그 사이 한국 야구는 성장을 거듭해, 이젠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한국 선수가 활약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수와 장면들 중에서도 내게는 8살 꼬맹이였던 그 시절 기억이 제일 소중하다. 박철순 선수가 곱슬머리를 흩날리며 공을 던지고, 타자가 헛스윙하고, 주심이 소리를 지르고…. 이보다 더 멋진 장면이 이 세상에 있을까. 어린 시절 내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했던, 야구의 추억은 아직도 내 핏속에 흐르고 있다. 박철순을 추억하며,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유병선(서울 서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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