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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보면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16]

등록 2022-07-12 11:00수정 2022-07-13 02:35

성연호씨가 2015년부터 모아온 야구 입장권들. 본인 제공
성연호씨가 2015년부터 모아온 야구 입장권들. 본인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첫 만남은 14년 전 어느 날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티브이(TV)를 보겠다며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우연히 야구를 봤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외운 선수 이름은 배영수였고, 첫 응원팀은 삼성 라이온즈가 됐다. 그렇게 야구 인생 첫걸음마를 뗐다.

스포츠 보는 걸 좋아하던 아이에게 야구는 삶의 한 조각이 됐다. 그리고 이 만남은 어린 꼬마를 햇수로 15년째 야구팬으로 장기 근속시키고 있다. 야구를 처음 접했던 그 순간은 순전히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야구는 삶의 곳곳에 자리 잡아 운명이 됐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니, 빼도 박도 못한다.

두산 베어스 투수 배영수(현 두산 베어스 코치)와 포수 박세혁(오른쪽)이 2019년 10월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투수 배영수(현 두산 베어스 코치)와 포수 박세혁(오른쪽)이 2019년 10월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승리해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직관은 2009년 7월11일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이 처음으로 무사사구 완봉승을 하던 날이었다. 중학생이었던 2014년 개막시리즈 때는 야구장 가면 (끝나고 돌아왔을 때) 현관문 안 열어준다는 부모님 으름장에도 야구장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맘때쯤 부산 가족여행에선 “부산에 왔으니까 사직야구장을 가면 안 되겠냐”고 묻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내 자리에 놓인 탁상달력에는 야구 대진표와 그날의 점수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전날 하이라이트를 휴대전화에 받아와 보는 게 루틴(규칙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수능은 치르지 않았지만, 입시 준비 때도 야구를 포기하는 게 지극히 어려웠다. 그렇게 야구와의 공존은 계속됐다. 어떤 걸림돌도 없이.

드디어 대학 수시 면접을 마치고 대전에서 올라오는 길. 케이티엑스(KTX)에서 목격한 2018 플레이오프(PO) 1차전 박정권(당시 SK 와이번스)의 끝내기 홈런과 플레이오프 5차전 이후 이어진 생애 첫 한국시리즈 직관까지! 늦은 저녁 맞이했던 에스케이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보고도 믿기 어려웠던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 됐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한동민이 2018년 11월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베어스와 경기에서 13회초 우승을 결정 짓는 솔로 홈런을 날린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한동민이 2018년 11월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베어스와 경기에서 13회초 우승을 결정 짓는 솔로 홈런을 날린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큰 힘을 보여줬고, 야구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세상에선 각각의 ‘나’였을지 몰라도, 야구장에선 모두 함께 ‘우리’가 됐다. 최소한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서로 같은 걸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응원할 수 있다는 기쁨! 성인이 되기 직전 그 끝자락에 서 있었기에 이 경험이 내게 더 위로가 됐을지도 모른다.

빗속에서 봤던 박재홍의 우익수 시구, 떠난 사람들까지 한데 엮어냈던 김태균의 영구결번식, 박용택이 데뷔했던 인천에서 목격한 정규시즌 커리어 마지막 타석. 과연 야구가 아니었다면 이런 놀라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을까?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고, 15년 동안 야구를 보며 ‘야구 보기를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행복한 장면들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우연은 앞날을 예견한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린아이는 메이저리그 시간에 맞춰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야구 시간에 맞춰 대학 수강 시간표를 짜며, 5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통계표를 분석하며 선수와 리그 성향 확인까지 끝낸 후 새벽 1시가 넘어서 자는 ‘야구광’이 됐으니 말이다.

​ 단순히 하이라이트만 보는 건 아니다. 시즌 스케쥴 표가 나오면 지방 원정 비용과 기차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계획표를 만든다. 다른 사람들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발품 팔아 모은 사인볼도 이제 100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발에 땀 나게 야구를 사랑했던 셈이다. 야구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어린아이는, 이제 많은 이들의 땀이 녹아있는 푸른 야구장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목표를 두고 있다. ​​ 이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야구에 대한 내 못 말리는 사랑에 혀를 내두른다. 가족과 친지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만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군 맞선임은 얼마 전 “내가 본 사람 중 야구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쯤에서,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야구 보면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취직은 물론 복학도 멀게만 느껴질 뿐인 현재 군인 신분의 나에게 야구는 돈이 되거나 밥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듯이, 야구는 이미 내게 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의 조건이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야구가 아니었다면 상상할 수 없던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 덕분에, 어떤 행복한 꿈을 꾸고 계시나요?

성연호(경기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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