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두메산골 깡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1978년)에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정도다. 그 시절 동네 형들은 골목길이나 논밭, 학교 운동장 등지에서 야구를 했다. 나도 규칙도 잘 모르면서 야구를 따라 하고, 그렇게 야구를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두메산골 마을에서 야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동네 형들 덕분에, 꼬마는 야구를 알게 됐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야구를 좋아하며 즐기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시절 우리의 야구는 참으로 치열했다. 동네에 있는 야구 글러브는 포수용을 포함해 4∼5개뿐이었고, 부족한 글러브는 비료부대로 만들어 대체했다. 야구라는 게 공을 던지는 것부터 방망이로 맞추는 것까지 제법 난도가 있는 운동이다. 초보자는 글러브를 사용해도 포구가 쉽지 않은데, 비료부대를 쓰다 보니 공을 놓치기 일쑤였고 손바닥이 많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타격도 헛스윙이 다반사였음은 물론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2년, 드디어 프로야구가 막을 올렸다. 공부 때문에 프로야구 중계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수시로 기록을 통해서 박철순, 장효조, 이만수, 김봉연 등등 유명한 선수들의 활약상을 꿰뚫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대학입시 학력고사를 준비하느라 그나마 보던 야구 중계를 더 보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해 가을쯤 체력 증진을 핑계 삼아 학력고사 시험일을 불과 2~3개월 앞두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글러브와 야구공을 샀다. 그리고 공부보다 더 열심히 글러브를 가지고 캐치볼을 하고 미니게임도 하며 야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입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박근학씨가 고등학교 3학년인 1983년에 산 글러브. 본인 제공
당시 글러브 가격은 9000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간직하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시골집에 쥐가 드나들면서 글러브와 야구공을 쏠았다. 결국 야구공은 전혀 사용할 수 없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글러브는 4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다. 몇 번이고 다시 묶고 수선하여 낡은 누더기 상태이지만 아직도 내게는 소중한 보물 같은 존재이고 캐치볼을 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
나의 야구 욕심에 둘째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워볼 요량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켰고, 5학년 때부터는 야구 교실을 다니게 했다. 하지만 아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내 짧은 판단으로 아들은 나를 닮아서인지 운동 센스나 피지컬이 선수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고 그저 취미로만 즐기게 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지금도 초·중·고교 학생 시절에 선수 생활을 단 1개월도 해보지 못한 채 취미로만 야구를 배웠던 것을 아쉬워한다. 물론 내 판단이 옳았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지 말고 취미로 하자는 내 지론에 따랐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나중에 야구가 하고 싶을 때 사회인 야구로 맘껏 즐기면 된다고 위안을 하지만 나도 아들 못지않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짙다.
박근학씨 아들이 엘지(LG) 트윈스 오지환 유니폼을 입고 투구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승리하면 조금 배우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크리스티 매튜슨)는 말도,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톰 글래빈)는 말도, “나와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스즈키 이치로)는 말도 다 야구선수로부터 나왔다고 하니, 야구라는 종목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은 야구를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 감독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평하는 이도 있다. 다 이길 것 같다가도 어이없게 지기도 하고, 질 것 같은 경기를 역전 끝내기로 이기기도 한다. 위기 뒤에는 찬스가 오고 득점 기회를 놓치면 실점 위기가 찾아온다. 직장에서도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면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승진과 보너스의 기회가 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박근학씨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박용택 은퇴 경기를 찾은 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최근 아들과 함께 박용택 선수의 은퇴식을 참관했고, 엊그제 이대호 선수의 은퇴사를 들었다.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선수들이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타석 하나하나를 간절히 여긴다는 말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나도 8회말 내지 9회초쯤 된 직장생활을 굿바이 홈런은 아닐지라도 적시타 한 번 날리고 마감하고 싶다. 나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근학(경기 수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