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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쓰레기 치우러 갔다가 죽빵을 보았다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6]

등록 2022-09-20 11:29수정 2022-09-21 02:34

한화 이글스 신인 선발투수였던 시절인 2006년의 안영명.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신인 선발투수였던 시절인 2006년의 안영명. 연합뉴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2006년 7월2일.

무려 16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는 이 날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있어 커다란 족적까지는 아닐지언정 수많은 야구팬의 뇌리에 꽤 깊게 새겨진 장면이 탄생한 날이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삼성 라이온즈 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녁 시간마다 야구 중계와 함께했다. 그래서 야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막상 야구장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과 우리 반이 다 같이 야구경기 단체 관람을 가게 되었다. 야구에 관심 없는 많은 친구는 별로 달갑지 않아 했지만, 경기 후 관중석의 쓰레기를 치우면 의무봉사활동 시간을 4시간이나 준다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야구장도 가보고 봉사활동 시간도 받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였다. 나는 경기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수업이 끝난 후 다 같이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한 대전 한밭야구장. 내 고향 대전의 한화 이글스와 지금은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의 경기가 열렸다. 사실 후술할 ‘그 장면’ 외에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 본 야구장이 그저 신나고 재밌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야알못’(야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방망이에 공이 맞기만 하면 ‘와!’ 하고 소리치거나 떡볶이를 먹기에 바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동수. 연합뉴스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동수. 연합뉴스

그렇게 즐겁던 어느 순간엔가 ‘그 일’이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눈을 의심하던 관중들 모두가 어리벙벙해 있던 와중 한 친구가 외쳤다.

“어머! 죽빵을 때렸어!”

그렇다. 그날은 한국 프로야구 벤치클리어링 역사의 한 부분을 당당히 장식하고 있는 ‘김동수-안영명 벤치클리어링 사태’가 일어난 날이었다. 한화 안영명이 던진 공에 몸을 맞은 김동수가 마운드로 달려가 안영명의 얼굴을 때린 것. 곧이어 양 팀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서로 따뜻하게 포옹(?)을 했고,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예쁘고 고운 말(?)로 현대 선수단을 격려(?)했다. 당시 안영명은 22살 신인. 김동수는 38살 베테랑이었다.

사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볼 때면 그 아비규환의 현장보다는 우리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더 잊을 수가 없다. 음악 선생님이자 항상 우아한 말투와 태도를 지니고 계셨던 그분이 얼마나 놀라셨는지 마치 혼자서만 일시 정지를 눌러놓은 듯 입을 떡 벌린 채 몇 분간 자리에서 미동조차 없으셨다.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2007년 10월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8회말 한화 안영명의 투구가 두산 이종욱의 몸에 맞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항의하고 있다. 안영명은 선수시절 이처럼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크고 작은 소동에 휘말리곤 했다. 안영명은 시간이 흐른 뒤 유튜브 등에 출연해 ‘당시 경기 분위기를 바꾸려는 벤치 지시 때문에 고의로 공을 몸에 맞추곤 했다’는 속사정을 밝혔다.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2007년 10월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8회말 한화 안영명의 투구가 두산 이종욱의 몸에 맞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항의하고 있다. 안영명은 선수시절 이처럼 몸에 맞는 공 때문에 크고 작은 소동에 휘말리곤 했다. 안영명은 시간이 흐른 뒤 유튜브 등에 출연해 ‘당시 경기 분위기를 바꾸려는 벤치 지시 때문에 고의로 공을 몸에 맞추곤 했다’는 속사정을 밝혔다. 연합뉴스

좌우지간 베이징올림픽으로 말미암은 프로야구 중흥기와 함께 몇 년간 대대적으로 실시한 KBO의 가족 친화적 캠페인으로 이러한 낭만(?)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나 또한 1년에 수십 번씩 직관을 다니지만, 그 경기 이후 단 한 번도 벤치클리어링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요즘도 가끔 김동수 해설위원(SBS스포츠)이 중계하는 경기를 보게 될 때면 강렬했던 나의 첫 야구장 방문을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안영명 선수, 잘 지내시죠?

박지혜(서울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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