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시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형철 <스포티비> 해설위원. 박강수 기자
덕질이란 본래 보상이나 목표를 바라고 행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좋아서 달리다 보니 ‘성덕(성공한 덕후)’의 경지에 오르는 이들이 생길 뿐. 임형철(26) <스포티비> 축구 해설위원도 그중 한 명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축덕’은 수없이 많지만 그처럼 왕성한 열정으로 성덕의 지름길을 주파해낸 이는 드물다.
임형철 해설위원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최연소 해설위원’이다. 그는 2016년 4월18일 K리그 챌린지 5라운드 대구FC와 FC안양 경기를 중계하면서 <스포티비>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당시 임 해설위원의 나이는 불과 20살. “긴장한 채로 전반 중계를 끝내고 하프타임이 됐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전문가의 세계를 노크해온 그의 꿈이 불과 4년 만에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리버풀FC 열성팬인 임형철 해설위원이 소장 중인 유니폼들. 임형철 제공
리버풀FC와 성남 일화(현 성남FC)를 사랑한 고등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팟캐스트에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는 축구 해설에 뜻을 두고, 축구팀 팬카페와 유명 축구 커뮤니티 약 20곳에 다짜고짜 ‘기명 칼럼’을 올리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점차 고정 독자가 늘어갔다. 작은 성공이 쌓여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축구 전문 서적을 냈고, K리그를 다룬 팟캐스트도 시작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축구 한 경기 더 보며 청춘을 바친 그는 대학 시절 더 치열하게 매진한 덕질의 결과, 덜컥 <스포티비> 신입 해설위원에 합격했다. 본인은 “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고 하지만 그의 해설은 초반부터 입소문을 탔다. 인터넷에서는 목소리 톤이나 경기 보는 눈이
‘완성형 해설위원’이라는 평이 돌았다. “생각해보면 고3 때 팟캐스트가 저의 방송 데뷔였다. 대본 쓰는 것부터 발성까지 꾸준히 연습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본인의 분석이다.
올해로 6년 차. 그의 입에서는 잉글랜드 3부리그 팀의 전력이며 태어나기도 전인 90년대 K리그의 추억 같은 것이 술술 나온다. 인터넷 방송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 함께 출연 중인 한준희 <한국방송> 해설위원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어떤 직업이든 공부가 기본인 것 같지만 모든 해설위원이 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건 아닌데, 임형철은 고시 공부하듯 축구 공부만 한다.” 축구가 직업이 된 뒤에도 여전히 ‘축구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다.
<스포티비> 축구 중계 스튜디오의 모습. 임형철 제공
그는 ‘어렸을 때 취미로 보던 축구와 직업이 된 이후 보는 축구 중 어느 쪽이 더 즐겁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지금이 훨씬 재밌다”고 했다. “제가 누리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알아가는 즐거움이다. 더 깊이 공부할수록 깊게 빠질 수 있지 않나. 축구를 즐기면서 봤으면 지금처럼 재밌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는 즐거움은 이미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임 해설위원에게 여전히 삶은 덕력을 연마하는 장이다. 매주 하는 축구 중계 외에 피파온라인 중계도 하고 축구전문 유튜브 채널 <이스타TV>(구독자 약 52만명)에도 고정 출연하며 전국의 축덕들과 소통한다. 그는 일본판 전통 히어로 장르물인 ‘특촬물’이나 특정 전자기기 덕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이 많아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되뇌어 봤다. ‘과도한 덕질은 때로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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