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씨(맨 왼쪽)가 손축구아카데미에서 아들 손흥민과 손흥윤, 유소년 선수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흥민 인스타그램 갈무리
군대에서 ‘각’은 생명이다. 내무반 생활은 각을 잡기 위한 시간이다. 근대적 군사교본이 전투력을 염두에 둔 태도의 하나로 각을 중시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도 책 읽는 것에서부터 잠자는 것까지 자세나 태도에 대한 주문은 엄격했다. 마음가짐에서 몸가짐이 나오고, 몸가짐에서 마음가짐이 나온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손웅정 저)를 보면 손웅정씨의 삶은 일관되게 ‘청소’와 연결돼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아침마다 혼자 훈련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면 마당과 화장실까지 다비질을 했다. 그래야 개운했다. 그러곤 집 뒤의 언덕길을 달리곤 했다.”(89쪽)
어려서 몸에 밴 청소 습관은 배웠다기보다는 타고난 성정이다. “운동, 청소, 책임져야 할 일, 약속한 일을 제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고약한 성격이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포장해주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항상 개인 운동을 하고 집 안 청소를 했다. 막노동판에 나갈 때는 새벽 운동을 위해 3시 반에 일어났다. 운동과 청소의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하루 일과다.”(51쪽)
담백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가난과 억압, 기득권에 저항하는 그를 일관성 있게 지탱해준 힘이다. “마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적이고 규칙적인 일은 어려운 시기를 버틸 힘을 준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가난과 고통도 배가된다.”(52쪽)
사실 청소를 하면 몸을 움직이게 되고,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방을 보면 기분도 새로워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손웅정한테는 참선의 길이기도 하다.
“(월급 27만원의)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출근하면 새벽부터 청소했다. 맨발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티끌 하나 없이 청소했다. 미화원 아주머니들 청소구역인 남자 화장실까지 락스와 장갑, 수세미를 챙겨 들고 구석구석 닦아냈다. 까다로울 정도로 깔끔떠는 건 청소뿐만이 아니다. 내 삶이나 생활이나 관계, 모든 것이 지저분하고 복잡한 걸 싫어한다. 삶은 담박할수록 좋다.”(45쪽)
그가 다녀간 호텔엔 흔적이 남지 않는다. 하루를 이용해도, 여러 날을 묵어도 똑같다. 한 지인은 “잠자고 나면 쓰레기를 하나의 봉투에 모은다. 청소 아주머니가 오면 그것만 들고 나가게 한다. 나머지는 들어올 때처럼 가지런히 해놓고, 물티슈로 테이블도 티끌 하나 없이 닦는다. 여러 날 묵을 때면 수건 공급 외에는 청소 아주머니가 할 일이 없다. 나갈 때는 들어올 때 그대로 방을 정리해놓고 나간다”고 했다.
런던 자택에서도 새벽 4시30분부터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환기며, 소리 나지 않게 하는 청소다. 아들이 운동 나간 뒤에는 청소기 돌려가며 본격적으로 한다. “청소 시간은 두 시간 이상이다. 청소 시간은 사색의 시간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지난 일들을 돌아본다. 마치 산책과도 같고 참선과도 같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물결치던 마음은 고요히 정돈되고, 몰랐던 질문의 해답들이 우물처럼 차오른다. 청소를 마치고 한 시간 반 동안 운동하면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에는 책을 읽는다.”(200쪽)
청소, 운동, 독서는 그의 3락이며, 몸과 마음을 닦아주는 3개의 키워드다. “누군가 내 영혼을 짓밟으며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 바라는 게 없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다.”(246쪽) 그의 말처럼 청소나 운동의 습관은 그의 삶의 태도와 자세가 된다. 그의 반골기질이나 반성적 사고는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충남 서산초등학교에서 남보다 늦게 축구를 시작한 손웅정씨는 어려서부터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팀을 창단하면서 서산초 감독까지 영입하겠다던 약속을 깨자, 그는 “그분(감독)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학기 동안 “얻어맞으면서도” 축구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고교와 대학 진학 때도 그는 불의한 것을 참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애초 정원 초과로 선수를 뽑았다가 무책임하게 탈락시킨 학교 행태에 분개하고, 혼자 남는 게 개운치 않아 “집도 절도 없는 거지가 될 것을 알지만” 대책 없이 짐 싸고 나오기도 했다.
기성 세계의 질서는 강고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합숙소 생활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무엇하나 변변한 것 없는 엉망이었다. 훈련만이 내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런 생활을 하며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것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를 물건 취급하는 현실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조금 실력이 보인다 싶으면 그 선수의 미래는 바로 어른들의 철저한 계산 안에서 저당 잡히고 만다.”(74~75쪽)
그 벽에 맞서 혈혈단신으로 싸우다 깨지고 좌절했다. 하지만 상처 속에서 더 단단해졌다. 그는 “나처럼 하면 안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정반대의 시스템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아들 흥윤과 흥민을 자신이 직접 가르쳤고, 프로그램도 기존에 없는 것으로 대체했다. 물론 훈련 때도 청소는 기본이다. “나는 흥윤이 흥민이와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이 넘게 깨끗이 바닥을 청소했다.”(170쪽)
“신외무물(身外無物), 나이가 들수록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275쪽) 청소와 운동, 독서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온 그는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 생각해보니, 자기애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군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혼자 슬며시 웃는다”(274쪽)고 했다. 하지만 자기애도 일종의 학습이고 노력이다. 배우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해뜨기 전에 졸려 눈뜨기도 어려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신을 번쩍 차린 고통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뤄진 것이다. 청소하는 마음 또한 자기애의 표시일 것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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