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지난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를 냈다. 이 책에는 손흥민을 가르치고, 길러온 그의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속에 드러난 그의 세계관, 축구철학, 아버지와 스승의 역할 등을 몇 차례 살펴본다. 먼저 그가 책에서 사용한 동서양의 명언을 통해 내면을 추측해본다. 축구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을 몹시도 싫어하는 그는 연간 평균 100권의 책을 독파하는 독서광이다. 젊은 시절부터 신문 스크랩을 했던 그가 가장 소중히 하는 것은 ‘독서노트’이다.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豬怕肥)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11쪽에 나오는 중국의 속담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웅정씨는 자기가 감히 책을 쓴다는 것을 겸양하여 낮추면서, 아들 때문에 과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손흥민으로 인해 알아봐 주는 이들이 생길 때마다 ‘오지랖 부리며 건방 떨고 살고 있다’며 반성하며 이 말을 새긴다고 한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소유 당하는 것이다”
지난해 손흥민은 제주도의 해병대 부대에 입소해 3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손흥민은 모범적인 생활로 상도 받았고, 백발백중의 영점 사격지를 들고 나왔다. 아버지는 “잡다한 것으로 주변이 채워지는 순간 선택할 것이 많아져 우왕좌왕 시간과 열정을 허투루 쓸 확률도 높아진다”며 아들의 동의를 얻어 사격지를 간직하지 않고 정리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서산대사의 답설야(踏雪野) 시구로 “내 뒤로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지 모르니, 눈 덮인 들판이라도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는 뜻이다. 손웅정씨는 “짧지만 너무도 큰 말이라 매일 곱씹는다. 교육자에게 이보다 올바른 지침이 되는 말은 없다. 부모든 선생이든 코치든 감독이든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이 문구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말 하나 지키며 사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대나무는 땅밑 뿌리작업에만 5년의 시간을 보낸다”
손웅정씨가 아들 손흥민에게 7년간 리프팅 등 기초만 닦도록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무가 위로 뻗어 나갈 것만 생각하면 사소한 태풍에도 무너지지만, 뿌리가 튼튼한 대나무는 하루에 20~30cm까지 자란다. 그는 기본기만 훈련하면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에게 말한다. “무엇이 불안한가? 당신들의 욕심이 늘 불안한 것 아닌가?”라고.
“먼저 눈을 깜박이지 않는 법부터 익혀라”
중국의 <열자>에 나오는 명궁 기창과 스승 비위의 이야기. 비위는 송곳이 눈을 찌를듯해도 감지 말고, 이 한 마리를 묶어두고 그것이 동산만큼 크게 보일 때까지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손흥민이 왼발, 오른발, 양발로 리프팅을 하며 운동장을 돌 때 아버지는 이런 각오로 훈련시켰다.
“좋은 책은 적어도 세 번 읽는다”
손웅정씨는 독서를 할 때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세 가지 펜을 준비한다. 책을 세 번까지 읽으면서 색깔별로 중요 대목을 압축해 표시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빨간색 메모는 독서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는 “읽기만 해도, 적어만 놓아도 소용없다. 반복해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노트 작성이 끝나면 책은 버린다.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반으로 생각한다”
<시경>의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구절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뜻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기쁘냐, 뿌듯하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는 손웅정씨는 “우리 삶은 늘 진행형이며 삶에는 완성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도달했다 하더라도 이제 반을 왔다는 심정으로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년등과(少年登科)와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손웅정씨는 아들이 선수 생활을 한 이후 늘 초심을 강조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항상 배고프고, 항상 바보처럼’이라는 연설처럼, 자기가 한일로 찬사를 받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마음을 잊지 말기를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그는 손흥민에게 “골든부트(득점왕) 받았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없다. 네가 할 일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흥민아,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 행복한 경기하고 와라”
옛날에는 손흥민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경기 피드백을 했지만, 요즘 경기하러 가는 날에 아들 배웅 나가 안아주며 하는 말이다. 행복에 초점을 맞추면 승패를 초월하고, 그런 선수는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지나가도록 두 개의 창문을 열어라. 하나는 마음의 창문, 다른 하나는 가능성의 창문을”
프로축구 선수였지만 20대 부상 은퇴 뒤 가장으로 막노동 등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손웅정씨가 자기를 존중하면서 한 말. 그는 “원망하고 후회하고 방황하는 것은 사치다.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를 잃는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두 개의 창문을 열었고, 늘 환기하고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노력보다 운에 달려있다는 말이지만, 손웅정씨는 다르게 해석한다. 재주나 노력이 3할이라면 운이 7할인 게 삶이라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운에 맡길 일은 아니다. 오늘 운이 좋았다고 내일도 좋으란 법이 없다. 운칠기삼을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더 강하다
“인생의 길은 공사 중이다”
손흥민이 잘 나갈 때도 있지만, 잘 나갈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화무십일홍이요, 새옹지마라고 말한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어도 취하지 말며, 나쁜 일이 있어도 낙담할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양심껏 살았으면 저녁에 발 뻗고 잘 수 있다”
손웅정씨는 ‘마음 불편하지 않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외모에서부터 짐작하시겠지만 나는 간섭받는 것이 싫다”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 영혼이 상하는 일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이 되는 것 아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공부도 더 해야 한다. 두피 관리도 해야 하고,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옷도 깔끔해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말수도 줄이고 목소리도 낮춰야 한다. 그것은 마음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도록 매일 마음을 들여다봐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마음의 흐름을 조종해야 한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