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의 팬들이 지난 25일 2023 하나원큐 K리그1 전북 현대와 개막전이 열린 울산 문수축구장을 찾아 응원하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팬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여러분(선수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봄 울산 현대가 제작한 유튜브 다큐멘터리 ‘푸른파도2’를 통해 공개된 홍명보 감독의 발언이다. 프로축구 팬덤의 심금을 울린, 이른바 ‘명버지(명보+아버지)’ 명언이다. 25일 울산문수축구장에서 만난 울산팬 김아무개(25)씨는 “(팬들의 마음을) 어떻게 아셨지, ‘팬 프렌들리’가 이런 건가 싶었다”라며 “(홍명보) 감독님 말씀처럼 울산은 일주일을 사는 힘이다. 저의 ‘행복 버튼’, ‘감정 버튼’이다”라고 했다.
축구 팬들을 위한 ‘희로애락 버튼’이 다시 작동한다. 지난 25일 울산과 전북 현대의 ‘현대가 더비’를 시작으로 2023 하나원큐 K리그1 첫 라운드가 이틀 간 치러졌다. 앞으로 8개월 동안 매주 전국 축구 팬들의 월요일 아침 표정과 일주일 활력을 결정지을 마흔 번째 여정의 시작이다. 시린 겨울, 봄 만큼이나 킥오프 휘슬을 손꼽아 기다려왔을 사람들은 개막전부터 경기장을 가득 채우며 남다른 흥행 조짐을 예고했다.
개막전을 찾은 울산 팬들의 모습. 울산 현대 제공
시즌 첫 ‘현대가 더비’가 열린 이날 ‘호랑이굴’에는
2만8039명 관중이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관중 경기가 치러졌던 2020년 이후 최다 관중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울산이 안방에서 우승컵 세리머니를 벌였던 제주 유나이티드와 리그 마지막 라운드 경기(2만3817명). 4개월 전보다 4천명 더 많이 왔다. 지난해 가장 많은 관객이 들었던 상위 열 경기 중 세 경기가 ‘현대가 더비’(2·6·10위)였던 만큼 라이벌전 효과가 컸다.
지난 몇 해 동안 ‘현대가 더비’에는 늘 예측불허 ‘날 것’의 서사가 함께했다. 지난 시즌 두 번째로 많은 관객(2만51명)이 들었던 10월의 ‘현대가 더비’는 선두 울산과 추격자 전북의 우승 레이스 향배가 걸린 일전이었다. 후반 추가시간에만 두 골을 넣으며 역전승을 일군 울산은 지난 17년 구단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가장 극적인 이야기로 가져갔다. 당시 중계화면에 잡힌 한
울산팬의 오열은 구단의 한과 열광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10년 차 울산 팬으로 생후 24개월 딸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김동훈(30)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감정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짜릿한 순간이었다”라고 당시 경기장 분위기를 돌아봤다. 반면, 대학 시절 친구들과 방문 응원을 온 전북팬 양희철(25)씨는 “선수들과 함께 울었다”라고 했다. 함께 온 김도균(27)씨는 “올해는 멤버가 워낙 좋기 때문에 전 대회 우승을 해야 한다. 최소 ‘더블’(2관왕) 본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딸과 함께 개막전 경기장을 찾은 김동훈씨. 박강수 기자
전북을 응원하기 위해 울산 방문 응원을 온 김도균(왼쪽부터), 김욱진, 조우진, 양희철씨. 박강수 기자
이날 개막 ‘현대가 더비’는 울산 출신 전북 이적생(아마노 준, 이동준)의 맹활약에도 울산이 다시 한 번 역전승(2-1)을 거두며 달라진 ‘위닝 멘탈리티’를 입증했다. 아울러 서울은 2만2204명(팬데믹 이후 역대 3위) 관중 앞에서 6전7기 만에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따냈다. 승격팀 광주FC가 수원 삼성을 1-0으로 잡아내며 돌풍을 예고한 수원에는 1만348명이, 포항 스틸러스와 대구FC의 난타전 현장(3-2 포항 승리)에는 1만4089명이 찾았다.
얼어붙었던 운동장을 깨우는 함성과 함께, 축구가 돌아왔다.
울산/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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