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28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 경기에서 마스크를 쓴 채 헤더를 시도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가 또 드러났다. 골 결정력 부족도, 백패스 문제도 아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면 더욱 극심해지는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도를 넘은 인신공격이다.
가나전이 끝난 뒤,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인스타그램에는 밤새 온갖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그 자리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차지하며 국민에게 기쁨을 줬던 영웅은 없었다. 오로지 패배 분풀이 대상만이 남아있었다. 안와골절을 당하고도, 대체 불가능한 실력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월드컵에 나서야 했던 선수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나전에서 선발 출장했던 권창훈(김천 상무)은 자신은 물론 연인까지 심각한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 수비와 공격을 오가며 헌신적으로 뛰었던 김진수(전북 현대)도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다른 선수들 역시 비슷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이후 많은 팬이 ‘선플’로 이런 공격을 덮었지만, 선수에 대한 도 넘은 비난이 여전하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황인범이 28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 경기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뛰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선수들은 자신들이 4년을 준비해온 경기를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우루과이와 대등하게 맞섰고, 가나전에선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2-2까지 따라붙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런 선수들에게 사이버 공격을 가하는 일에 비하면 패배 뒤 괴로워하는 손흥민 곁에서 ‘셀피’를 찍으려 했던 가나 스태프의 행동은 애교 수준이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가나전에 대해 “완벽한 월드컵 드라마를 위한 요소에는 멋진 골, 감동적인 반격, 끊임없는 기세 전환, 최후의 수비, 훌륭한 골키퍼, 득점을 축하하며 카메라 렌즈 앞에서 욕하는 일, 경기 종료 휘슬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는 슈퍼스타가 있다”라며 “이 경기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대결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경기가 그들이 전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면, (한국과 가나) 둘 다 16강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평가했다. 바깥에선 찬사가 나오는데, 안에서 오히려 침을 뱉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에 대한 공격을 보며 지난 24일 열린
캐나다와 벨기에 경기를 떠올렸다. 이날 캐나다는 0-1로 패했고, 팀 에이스 알폰소 데이비스(바이에른 뮌헨)는 페널티킥 실책을 범했다. 하지만 존 허드먼 캐나다 감독은 “우리는 지금 월드컵 무대에 있다. 팬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고, 캐나다 국민도 이에 화답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날 캐나다 국영 방송 <시비시>(CBC)는 “캐나다는 월드컵 개막전에 패했지만(lost), 존경을 얻었다(won)”고 했다. 슬프게도 우리는 승리보다 더 중요한 걸 잃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김민재가 28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가나와 경기 도중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김민재는 이날 다친 장딴지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경기를 뛰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지휘했던 신태용 감독은 당시 출사표를 던지며 <월간중앙>에 “우리나라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이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 축구는 분명 피, 땀, 눈물 섞인 노력 덕분에 그간 조금씩 발전을 거듭했다. 백패스와 자책골을 반복하고 있는 건, 익명 뒤에 숨어 선수들의 영혼에 칼을 꽂는 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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