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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빙속 500m 동’ 쾌거…육상 100m서 메달 딴 셈

등록 2006-02-14 19:55수정 2006-02-14 19:57

[토리노 겨울올림픽] 세차례 아찔한 위기 0.02초차 메달 갈려
허벅지는 터질 듯 팽팽해진다. 중력을 거부하고 앞으로만 나가기 위해 두팔을 힘차게 휘두른다. 빙판과의 마찰이 힘겹다.

이강석(21·한국체대)은 마지막 남은 근육 속의 글리코겐을 다 연소시키며 골인했다. 전광판에는 35초09가 찍혔다. 숨막힐 듯 긴장된 순간이 잠시 흐른 뒤, 그의 이름 옆에는 1·2차 시기 합계기록 70.43과 동메달을 뜻하는 ‘3’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순간 이강석의 두손은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었고, 한국 선수단과 응원단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14일 새벽(한국시각)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가 열린 오발링고토 아이스링크. 1차 시기에서 35초34를 기록했던 이강석은 2차 시기 더 빠른 질주로,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때 김윤만의 은메달(남자 1000m) 이후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무려 14년 만에 한국에 감격의 메달을 안겼다.

옆선수 부정출발에 리듬 깰뻔
코스 교차지점에서 충돌할뻔
막판 지구력 한계로 처질뻔

금메달은 37명의 출전자 중 유일하게 1·2차 시기를 모두 34초대에 주파한 미국의 조이 칙(69초76)이 차지했고, 2그룹에서 뛴 드미트리 도로페에프(러시아·70초41)가 이강석에 불과 0.02초 앞선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이강석의 동메달은, 육상 100m에 비견되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나온 것이어서, 쇼트트랙 금메달 이상으로 값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강석은 이날 3차례 이슬아슬한 위기를 극복했다. 첫번째 위기는 1차 시기에서 맨 마지막 19조에 함께 편성된 킵 카펜터(2002년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500m 동메달리스트)가 부정출발하면서 왔다. 킵이 또 부정출발을 하면 이강석은 혼자 레이스를 펼칠 수밖에 없어 불리해지는 상황이었다. 이강석은 경기 뒤 “킵이 부정출발하는 바람에 리듬이 깨져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강석은 재출발에서 100m를 9초65의 좋은 기록으로 스타트를 끊어 위기를 넘겼다.

두번째 위기는 인코스와 아웃코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킵과 충돌할 뻔 한 것. 아웃코스로 뛴 이강석은 자신보다도 교차지점에 늦게 도착한 킵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여야 했다.

마지막 3번째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2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기록(34초55)에 근접하면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다. 조이(1차 시기 1위)와 함께 출발한 이강석은 초반 조이를 제치고 100m를 9초63에 돌파해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3코너까지 앞서 가던 이강석은 4코너에 접어들며 눈에 띄게 지쳐갔다. 지구력이 약한 그에게 한계가 온 것이다. 이강석은 이 순간 “사력을 다했다”고 경기 뒤 털어놨다. 35초17은 1차 시기 기록을 0.17초 단축하고 조이(34.94)에 이은 2차 시기 2위의 기록이었다.

김윤만은 알베르빌에서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이강석은 “0.02초 차이로 은메달을 놓친 게 아쉽지만, 동메달만으로도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이강석과 함께 출전한 최재봉(26·동두천시청)은 71초04로 8위, 이규혁(28·서울시청)은 71초38로 17위, 1차 시기에서 미끄러졌던 권순천(23·성남시청)은 최하위로 밀렸다.

토리노/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노트북 가방에 ‘세계신’ 가토 사진…“타도 가토!”

“이강석은 아직도 성장 중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

14일 이강석이 동메달을 따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본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의 말이다. 전 교수는 2002년 무명의 이강석을 한국체대로 데려간 주인공. 그는 이강석에 대해 “처음에 입학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선수였는데, 딱 1년 만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이강석은 의정부고 시절 동기 여상엽(22·한국체대)에 가려 있었다. 2003년 한국체대에 입학한 뒤에도 별다른 활약을 못했으나, 2004년 스케이트에 눈을 떴다. 그 해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오픈대회에 출전하면서 1992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500m 은메달리스트인 구도야 도시유키 일본대표팀 코치에게 일주일간 지도를 받았다. 기술과 집중력을 터득한 이강석은 그 해 여름 무섭게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해 힘을 길렀다. 특히 자신의 노트북 초기화면에 500m 세계신기록(34초30) 보유자 가토 조지(일본)의 사진을 올리고 ‘타도 가토’를 외쳤다. 틈만나면 스타트가 환상적인 가토의 경기장면 동영상을 지켜봤다. 그 결과 이강석은 현재 세계정상권인 9.5~9.6초대의 100m 스타트를 기록 중이다.

2004년까지 국제대회에서 20위권에 머물던 이강석은 힘과 기를 갖추고 지난해 1월 인스부르크 겨울유니버시아드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 국제빙상계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어 같은해 11월 솔트레이크시티 제2차 월드컵 500m에서 34초55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2위를 차지한 뒤, 밀워키 월드컵시리즈에서 마침내 500m 랭킹 1위에 올라 세계 빙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서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 시미즈 히로야스(일본) 얀 보스(네덜란드) 등 한물간 스타들은 물론, 가토와 유 펭통(중국) 등 ‘맞수’들을 모조리 앞질러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전 교수는 “이강석은 이제 21살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 빙상계를 이끌며 한국 최초의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도 기대해볼 만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토리노/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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