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금메달 소감도 제가 달려가야 빛나지요
이탈리아 유학생 홍상희(25·사진·토리노국립미술원 박사과정)씨는 요즘 올림픽 앰블럼이 새겨진 빨간색 옷을 입고 경기장을 누빈다. 그의 가슴에는 ‘저는 한국말을 합니다’라고 적힌 글귀가 달려 있다. 한국인이 홍씨를 만나면 도움을 청하라는 뜻이다. 그는 토리노 겨울올림픽의 유일한 한국인 자원봉사자다. 그가 하는 일은 한국어 통역과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13일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1500m 경기에서 나란히 금·은메달을 땄을 때 그는 인터뷰실에서 선수들 옆에 앉아 이탈리아말로 통역을 했다. 홍씨는 “이호석 선수가 ‘피곤해요’라고 말해 마음이 안쓰러웠다”며 “이호석 선수는 귀여웠고, 안현수 선수는 어른스러웠다”고 느낌을 전했다. 그는 “솔직히 한국 선수들 중에 전부터 이름을 아는 이는 안현수 선수 밖에 없었다”며 “직접 경기를 보니 모두가 장하고 대단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어 자원봉사자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토리노의 한국인 유학생이 고작 19명에 불과해 조직위가 한국어 통역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홍씨는 “솔직히 시험기간이라 망설였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같아 선뜻 응했다”고 했다. 물론 무보수 자원봉사다.
유학기간 갈고닦은 이탈리아어 실력발휘
전공시험도 미뤄…“이호석 선수 귀여워요” 홍씨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다”며 “한국인 중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서운해했다. 이강석 선수가 동메달을 딴 14일에는 전공시험과 겹쳐 하마터면 빙상장에 못갈 뻔했다. 그는 “교수에게 통사정해 시험을 6월로 연기하고 부랴부랴 오발링고토 빙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이강석 선수가 동메달을 따 큰 보람을 느꼈다”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겨울 스포츠와 맺은 인연이 있다. 스케이트를 좋아해 집 근처 목동실내링크장에 자주 놀러갔다. 그곳에서 휘문고 선수들의 아이스하키를 보고 거기 푹 빠지기도 했다. 그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어떤 코치에게 선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며 “지금도 그분이 준 명함이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대미술을 전공하는 그는 2001년 4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토리노에 왔다. 유학 서류를 3번이나 찢었던 아버지(57)는 눈물을 흘리며 끝내 딸의 유학을 허락했다. “토리노 공항에 내렸을 때 정말 막막했어요. 이탈라이 말이라곤 ‘차오’(안녕) 한마디밖에 몰랐는데, 무작정 택시를 타고 서투른 영어로 숙소에 도착했지요.” 숙소에 도착한 뒤에도 ‘슈퍼마켓’이라는 말을 못해 일주일 동안이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유학생활의 고달픔을 전했다. “이제는 학사와 석사 학위도 받았고,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세요. 앞으로 2년 정도 더 공부한 뒤 가능하면 이탈리아에서 직장을 구할 생각입니다.” 그는 “겨울 스포츠와 또다시 깊은 인연을 맺었다”며 “한국 선수단이 내 인생에 큰 추억거리를 안겨줬다”고 밝게 웃었다.
글·사진 토리노/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전공시험도 미뤄…“이호석 선수 귀여워요” 홍씨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다”며 “한국인 중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서운해했다. 이강석 선수가 동메달을 딴 14일에는 전공시험과 겹쳐 하마터면 빙상장에 못갈 뻔했다. 그는 “교수에게 통사정해 시험을 6월로 연기하고 부랴부랴 오발링고토 빙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이강석 선수가 동메달을 따 큰 보람을 느꼈다”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겨울 스포츠와 맺은 인연이 있다. 스케이트를 좋아해 집 근처 목동실내링크장에 자주 놀러갔다. 그곳에서 휘문고 선수들의 아이스하키를 보고 거기 푹 빠지기도 했다. 그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어떤 코치에게 선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며 “지금도 그분이 준 명함이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대미술을 전공하는 그는 2001년 4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토리노에 왔다. 유학 서류를 3번이나 찢었던 아버지(57)는 눈물을 흘리며 끝내 딸의 유학을 허락했다. “토리노 공항에 내렸을 때 정말 막막했어요. 이탈라이 말이라곤 ‘차오’(안녕) 한마디밖에 몰랐는데, 무작정 택시를 타고 서투른 영어로 숙소에 도착했지요.” 숙소에 도착한 뒤에도 ‘슈퍼마켓’이라는 말을 못해 일주일 동안이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유학생활의 고달픔을 전했다. “이제는 학사와 석사 학위도 받았고,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세요. 앞으로 2년 정도 더 공부한 뒤 가능하면 이탈리아에서 직장을 구할 생각입니다.” 그는 “겨울 스포츠와 또다시 깊은 인연을 맺었다”며 “한국 선수단이 내 인생에 큰 추억거리를 안겨줬다”고 밝게 웃었다.
글·사진 토리노/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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