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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날에 들춰보는 아데토쿤보의 일생 [박강수 기자의 인, 플레이]

등록 2022-06-19 18:24수정 2022-08-29 00:54

24일 공개 앞둔 디즈니 실사 영화의 주인공
NBA 결승서 “현재 순간에 몰입, 그게 겸손”
형제들과 자선 단체 세워 소외계층 농구 교육
밀워키 벅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지난 5월13일 미국 밀워키에서 열린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와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슛을 하고 있다. 밀워키/AP 연합뉴스
밀워키 벅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지난 5월13일 미국 밀워키에서 열린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와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슛을 하고 있다. 밀워키/AP 연합뉴스

아데토쿤보(Adetokunbo). 서아프리카 일대 요루바족 출신 사람들의 이름으로 종종 쓰이는 이 말에는 요루바 말로 ‘바다를 건너온 왕(왕관)’이라는 뜻이 있다. 야니스 아데토쿤보(28·밀워키 벅스)가 2013년 미국 땅으로 건너왔을 때, 사람들은 ‘왕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했다. ‘요루바어→그리스어→영어’로 옮겨 적으면서 표기법(Antetokounmpo)이 한층 복잡해진 것도 한 몫 했다. 그를 영입한 밀워키가 트위터에 발음법을 공지했지만, 미국인들은 대신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리스 괴인(Greek Freak).”

괴인 다운 신장(211㎝·109㎏·윙스팬 221㎝)을 가진 아데토쿤보는 나이지리아계 그리스 이민자 출신 농구 선수다. 비록 이번 결승전은 집에서 TV로 봐야 했지만 그는 현재 미국프로농구(NBA)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다. 지난 시즌 팀에 반세기 만의 우승컵을 안기고 결승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 2연패(2019∼2020), 올해의 수비왕(2020), 올스타 6회, 베스트5 4회 등 기록을 썼다. 올해에는 미프로농구 사무국에서 선정한 ‘NBA 75주년 기념팀’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고, 그의 일생을 담은 디즈니 실사 영화가 오는 24일 디즈니 플러스 공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아데토쿤보가 농구를 시작한 그리스 아테네 세폴리아의 농구장에는 이제 그의 모습이 그라피티로 그려져 있다. 아테네/EPA 연합뉴스
아데토쿤보가 농구를 시작한 그리스 아테네 세폴리아의 농구장에는 이제 그의 모습이 그라피티로 그려져 있다. 아테네/EPA 연합뉴스

19살의 깡마른 소년이 대서양을 건너와 이 모든 업적을 쌓아 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9년. 그의 부모는 나이지리아를 떠나 그리스에 불법 이민자로 정착했고, 아데토쿤보와 4형제는 관광객에게 시계, 가방, 선글라스 등을 팔면서 생계에 일조했다. 길쭉한 팔다리를 타고난 그는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농구를 시작했고, 불과 5년 만에 꿈의 무대인 미프로농구 드래프트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리스 시민권이 주어진 것도 이때였다.

그리스 괴인은 미국의 냉혹한 스포츠 비즈니스 세계에서 동시에 두 종류 ‘낭만 동화’를 썼다. 불법 이민자에서 백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된 성공담. 그리고 자신을 선택해준 팀을 버리지 않고 끝내 우승시킨 프랜차이즈 스타의 영웅담. 그런데도 그는 초연하다. 삶의 파고가 가슴속에 새겨놓은 철학 덕분일 것이다. 지난해 7월 결승전 4차전 승리 후 기자회견 자리서 ‘겸손의 비결’에 대해 질문을 받은 아데토쿤보는 이렇게 말했다.

“제 경험에 비춰보면, ‘내가 해냈어, 난 정말 대단해’ 이런 생각에 취해 있다가는 다음 날 망하더라고요. 이렇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아냈죠. 과거에 이룬 것에 집착한다면, 그건 당신의 자존심(Ego)입니다. 앞으로 이룰 것에 집중한다면, 그건 저의 오만(Pride)이 되죠. 저는 현재,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겸손(Humility)입니다. 결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고, 나가서 게임을 즐기는 거죠.”

연습 중인 아데토쿤보. EPA 연합뉴스
연습 중인 아데토쿤보. EPA 연합뉴스

몰입할 뭔가를 찾아낸 사람들은 단단해진다. 잿더미가 된 일상 속에서 일궈낸 재능일수록 더 각별하게 빛난다. 2018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축구 선수 루카 모드리치(37)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을 떠나 낡은 호텔을 전전하면서 공을 찼다. 지난 14일 2022 카타르월드컵 플레이오프 페루와 경기에서 승부차기 6번 키커로 나서 호주를 본선으로 이끈 아워 마빌(27)은 케냐의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다.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미식축구(NFL) 선수 크위티 페이(24) 역시 기니 난민 캠프 태생이다.

아데토쿤보는 자신과 같이 미프로농구에서 뛰고 있는 형제들과 ‘아데토형제 아카데미(AntetokounBros Academy)’라는 자선 단체를 설립해 소외된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운동선수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쥐었던 천재일우의 기회를 약소하나마 시스템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공식 누리집에는 국적과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더 나은 팀 동료, 더 나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그들의 잠재력을 해방한다”고 적혀 있다.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그들 안에 미래의 아데토쿤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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