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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메이트가 최강 라이벌”…승부는 섭씨 70도 운전석보다 뜨겁다

등록 2023-04-20 08:00수정 2023-04-20 08:34

[‘찐’한 인터뷰] 넥센-볼가스 모터스포츠 원투펀치
슈퍼레이스 김재현·정의철
정의철(왼쪽)이 지난해 7월17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열린 2022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4라운드 삼성화재6000 클래스에서 우승한 뒤 준우승한 김재현과 포옹하고 있다. 슈퍼레이스 제공
정의철(왼쪽)이 지난해 7월17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열린 2022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4라운드 삼성화재6000 클래스에서 우승한 뒤 준우승한 김재현과 포옹하고 있다. 슈퍼레이스 제공

드라이버들이 정의하는 레이싱은 고통이다. ‘레이스의 즐거움’을 묻는 말에 “즐겁지 않다”는 답이 돌아온다.

“차 타기 싫어요. 특히 여름에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싫어요. 어떤 선수든 이런 생각 해봤을 걸요.” (김재현)

섭씨 60∼70도까지 치솟는 스톡카 운전석 안에서 야생마 같은 기계를 어르고 달래며 40분씩 치르는 극한의 경주는 기진맥진하고, 천 분의 일초를 겨루는 압박감은 피를 말린다. 괴롭지만, 이 괴로움이 처음 핸들을 잡은 날의 두근거림과 어우러져 여전히 그들의 청춘을 붙들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의 넥센-볼가스 모터스포츠팀 캠프에서 만난 김재현(28)과 정의철(36)도 마찬가지다. 25년 차 드라이버 정의철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 재밌지만, 프로가 되면 매년 성적에 따라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지금은 스트레스가 더 크다. (재미는) 잘 마치고 나서의 성취감이지 과정이 재밌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도 1998년 처음 카트 대회에 출전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배기음, 냄새까지 기억난다”고 한다.

넥센-볼가스 모터스포츠의 정의철(왼쪽)과 김재현.
넥센-볼가스 모터스포츠의 정의철(왼쪽)과 김재현.

둘은 한국의 대표 모터스포츠 대회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최상위 클래스 삼성화재6000에 출전하는 프로 드라이버다. 올해로 18년 차를 맞은 슈퍼레이스는 총 여덟 라운드로 구성되며 라운드별 순위에 따른 포인트를 합산해 시즌 챔피언(개인·팀·타이어 세 부문)을 가린다. 지난해부터 합을 맞춘 두 선수는 팀 순위(10팀)에서 2위, 개인 순위(21명)에서 2위(김재현)와 6위(정의철)를 기록했다. 말하자면 ‘준우승 시즌’이었다. 하지만, 그 내막은 좀 더 극적이었다.

“작년 챔피언은 한국-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였다. 프로는 결과만 놓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과정을 본다면 시즌을 지배한 건 저희였다고 생각한다.” 정의철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네 번째 챔피언에 등극한 김종겸과 아트라스BX를 끝까지 위협하며 자웅을 겨룬 볼가스 팀은 가장 역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팀이었다. 대기업 후원을 받는 메이저 팀들에 ‘한 방 먹인’ 중소기업 팀이었고, 시즌 내내 실격과 우승을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탄 팀이었다.

늘 사고 다발 레이스였다. 네 번이나 라운드 포디움(우승 2회·준우승 2회)에 오른 김재현은 두 번 차 사고로 완주에 실패했다. 4라운드 챔피언에 올랐던 정의철도 두 번 탈락했다. 특히 6라운드에서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경기 뒤 검수에서 탑승 차량의 무게가 규정치에 미달한 것이 밝혀져 실격됐다. 팀에서 주유량을 잘못 계산한 ‘실수’였다. 김재현은 “실수에도 허용치라는 게 있다. 프로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정의철. 슈퍼레이스 제공
정의철. 슈퍼레이스 제공

김재현. 슈퍼레이스 제공
김재현. 슈퍼레이스 제공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심기일전한 볼가스는 막판 스퍼트를 발휘, 김재현이 마지막 8라운드 1위를 차지했다. 시즌 종합 점수에서 챔피언 김종겸과 격차는 단 1점. 김재현은 “둘이 실격으로 라운드 네 개를 날리고도 준우승을 한 게 오히려 대단하다”고 했다. 볼가스는 모두를 놀라게 했고 김재현은 지난해 12월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 시상식에서 ‘올해의 드라이버’에 뽑혔다. 2012년 시작된 이 시상식에서 슈퍼레이스 챔피언이 아닌 올해의 드라이버는 딱 두 번 있었는데 모두 김재현(2014·2022)이다.

남은 건 슈퍼레이스 챔피언 왕좌뿐이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차량 트러블로 김재현의 ‘1점 차 준우승’ 접전에 힘을 보태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은 정의철은 스토브리그 기간 체중 감량에 매진하며 생애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9㎏을 빼고 인터뷰 날에도 수척해진 모습으로 “요즘 항상 지쳐있다”라며 웃던 정의철은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니 체력적으로 더 철저히 준비했다. 정신적으로 ‘이렇게 열심히 했다’는 기댈 곳을 찾는 것도 있다”라고 했다.

볼가스 팀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넥센타이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팀 이름이 넥센-볼가스 모터스포츠로 바뀌었다. 이른바 ‘메이저 대기업 후원 팀’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김재현은 “ 넥센 계약을 떠나서 이미 작년에 정의철 선수가 들어오면서 언더도그 위치는 벗어났다 . 성적으로 보여줬다. 우리가 더 잘하면 잘했지, (다른 메이저 팀은) 간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의 드라이빙 실력만큼이나 거침없는 자신감을 표했다 .

단란한 모습의 볼가스 팀. 슈퍼레이스 제공
단란한 모습의 볼가스 팀. 슈퍼레이스 제공

둘은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롭게 경쟁하는 파트너다. 이미 두 번의 시즌 챔피언 경험이 있는 정의철은 세 번째도 “간절하다”고 말하지만, 시즌 챔피언만 못해 본 김재현은 “우승해도 별 감흥 없을 것 같다. 저는 (레이싱을 통해) 저를 잘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한다. 지난 시즌 김재현이 레이스 중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쿨링 수트를 거부하자 정의철도 동참했다. 김재현은 “(입으면) 지는 것 같아서”(?)라고 했고 정의철은 “팀메이트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했다.

올 시즌 넥센-볼가스의 차량에서는 아예 쿨링 수트 연결 장치가 제거됐다. 승부욕을 식힐 생각이 없는 두 드라이버는 오는 22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첫 질주를 시작한다.

용인/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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