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은 결국 반복의 게임”(‘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미디어 북’)이라고 박진호(46·청주시청)는 말한다. 설명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 패턴과 루틴을 지키면서 쏜 한 발 한 발이 60발이 돼 본선이 끝나고, 또 결선을 치른다. ‘얼마나 자기 것을 온전히 보여주느냐’로 결과가 판가름난다. 스스로 만족하는 경기를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사격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반복을 수행하는 일”이다.
23일 중국 항저우의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그는 “그 ‘반복’이 오늘 초반에 너무 안 됐다”라고 했다. 사격 R1(SH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결선에서 합계 244.5점을 쏴 같은 팀 후배 이장호(34·청주시청)에 0.1점 뒤진 2위를 기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걸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제가 총을 놓는 리듬이 아니더라”라며 “‘될 때까지 한 발만 제대로 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 한 발이 보이고부터 따라갈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어려운 승부였다. 이 종목 결선에서는 선수당 총 24발을 쏜다. 5발씩 두 번 사격한 뒤 2발씩 쏘면서 최하위 순위를 차례로 떨어뜨린다. 첫 5발을 마쳤을 때 박진호는 전체 8명 중 7등이었고, 10발을 마쳤을 때는 6등이었다. 난조가 확연해 보였는데 12발째에서 5위, 14발째에서 2위로 비약했다. 경기 뒤 그가 밝힌 바로는 전날부터 열이 38도까지 치솟으며 컨디션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해열제 투혼’을 발휘한 맹추격이었다.
박진호가 23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사격 R1(SH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경기를 치르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사격 강국인 한국 대표팀에서도 박진호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이번 대회 전까지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 3개 포함 8개의 메달을 쓸어담았고, 세계선수권에서 15개의 메달(금 5·은 4·동 6)을 수확했다. 여자부 이윤리(49·전남장애인체육연맹)와 더불어 한국에 두 명뿐인 개인전 세계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2021년 도쿄패럴림픽에서 사격 R1 본선 기록(631.3점)을, 올해 5월 창원장애인사격월드컵에서 결선 기록(250.2점)을 세웠다.
다만 아직 그에게는 패럴림픽 금메달이 없다. 2년 전 도쿄에서 은메달, 동메달을 하나씩 따냈을 뿐이다. 이번 항저우 대회를 앞두고 “재밌게 즐기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던 박진호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그 숨은 뜻을 밝혔다. 그는 “목표를 (2024년 파리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으로 잡았다. (항저우 대회는)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 대회 결선에서 즐길 수 있다면 패럴림픽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렇게 말씀드렸다”라고 했다.
한 발 한 발 쌓아 올리며 박진호는 지금을 만들어왔다. 미동 없이 가늠자 너머를 응시하던 각진 눈매는 사선에서 내려오면 부드럽게 풀어진다. 그는 나긋하고 맑은 음조로 “저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는데, 사격을 통해서 그나마 차분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수행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라고도 했다. 10∼50m 바깥 지름 4.5㎝의 표적지를 0.1점 단위로 쪼개는 반복의 세계에서 반평생을 보낸 그는 소총을 든 구도자다.
박진호(왼쪽)가 23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사격 R1(SH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가운데는 금메달을 딴 이장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실력이 밀려서 밀려나기보다 ‘이쯤 하면 됐다’ 싶은 시점에 스스로 물러나고 싶다는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여럿 남은 듯 보인다. 당면한 미션은 25일 사격 R3(SH1 혼성 10m 공기소총복사) 경기다. 박진호는 “남은 세 경기도 최대한 즐겨보겠다”라고 했다.
항저우/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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