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를 떠나 서울 삼성에 입단하게 된 이상민이 31일 서울 태평로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본의 아니지만 “새로운 각오로 뛰겠다”
그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노타이 양복과 면도도 안한 초췌한 얼굴을 본 몇몇 여학생 팬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KCC(전신 현대 포함)에서만 13년을 뛴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35). 하지만 KCC가 ‘국보센터’ 서장훈(33)을 영입하면서 그는 보상선수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삼성으로 옮기게 됐다. 그리고 31일 삼성 유니폼을 입기 위해 서울 태평로빌딩 입단식장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엔 그늘이 잔뜩 내려앉았다. KCC에서 달았던 등번호 11번이 새겨진 삼성 유니폼을 입고, 머리엔 모자를 썼다. 안준호 감독과 악수를 나눴지만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이 “좀 웃어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살짝 미소지을 뿐이었다.
말문은 열었지만 들릴듯 말듯 힘없는 목소리였다. “며칠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KCC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최근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엔 안 좋았고…, 저보다 가족들과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 뒤에야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뛰겠다”며 간신히 말을 마쳤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안준호 삼성 감독 목소리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이상민 선수 입단을 열렬히 환영한다. 평소 이상민 선수와 같이 농구하고 싶었던 꿈이 이뤄져 영광이다.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하고, 코트에서는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포인트가드, 최고 인기선수가 합류해 감격스럽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조승연 단장도 “상민이 덕분에 덩달아 플래시 세례를 받게 돼 기분좋다. 주위에서 축하전화 많이 받았다. 선수명단에 ‘이상민’이라는 이름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맞장구 쳤다.
그러나 이상민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삼성이) 따뜻하게 반겨줘 감사하다. 한 팀에 오래 있다보니 좀 낯선 감이 있지만 노력하겠다. KCC에서 이뤘던 성적만큼 삼성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많다”고 답했다.
서장훈과 맞트레이드된 꼴이 된 이상민은 “(서)장훈이와 통화했다. 장훈이와 손발을 맞춰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장훈이는 지금 나보다 더 힘들어한다. 자기 때문에 내가 희생양이 됐다며 너무 미안해 한다. 나도 장훈이가 우리 팀 온다고 해서 기분 좋았는데…, 인연이 없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서장훈도 충격이 큰 듯 1일 예정된 KCC 입단식은 무기 연기됐다.
이상민은 한국농구연맹(KBL) 자유계약선수(FA) 제도 관련 규정에 대한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일일이 얘기할 순 없다. 어린 선수들도 그 문제 때문에 농구를 그만둘 수 있다”고 했다. 과거가 돼버린 ‘프랜차이즈 스타’의 작지만 간곡한 항변이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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