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남자 근대5종의 정훤호(26·대구시체육회)는 지난 3일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경기에서 2차례 낙마하며 ‘실권’(0점) 처리되는 순간 “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고통 탓이 아니었다. 피, 땀, 눈물이 담긴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는 경기장 한쪽 구석에 앉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료들은 위로의 말조차 감히 건넬 수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 근대5종을 비롯해 사격, 펜싱, 양궁, 요트, 조정, 카누 종목을 취재했다. 한국의 금메달 79개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29개가 나온 종목들이다. 간판선수와 금메달리스트 위주로 스토리를 찾아다녔고 기사를 썼다. 하지만 사연 없는 선수는 없었다. 메달 색깔에 따라 알려지느냐 묻히느냐 결정될 뿐이다.
1위와 배 길이의 반의 반도 안 되는 0.51초 차이로 은메달을 따낸 조정 남자 싱글스컬의 김동용(24·진주시청)은 경기 뒤 어머니를 떠올렸다. “제 시합을 앞두고 항상 절에 가서 삼천배를 하세요. 1위와 한참 차이가 났다면 덜 아쉬웠을 텐데….” 요트의 이태훈(28·보령시청)은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4위를 했다. 한국이 4개의 금메달을 따내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찬 요트경기장을 떠나는 그의 씁쓸한 표정에서 지난여름 그가 밝힌 비장한 각오가 떠올랐다.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이 아시아 최강임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카누 슬랄롬의 이정현(21·중원대)은 불과 0.01초 차이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국내엔 정식 급류 경기장이 단 1곳도 없다. 슬랄롬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근대5종의 정훤호는 두 달 전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났었다. 아침 7시 비가 내리는 육상경기장에서 최은종 감독과 정훤호를 비롯한 4명의 선수들이 상의를 벗고 빗물과 땀이 범벅이 된 채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표팀 맏형으로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자신의 별명이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는 뜻에서 ‘불꽃남자’”라고 했다. 그 말대로 정훤호는 승마에서 실수를 했지만 마지막 복합경기에선 사력을 다해 22명의 선수 중 2위를 했다. 메달로 드러낼 수 없는 땀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를 비롯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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