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가 15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 2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남자 75㎏급에서 크로아티아 보조 스타르체비치를 누르고 동메달을 따냈다. 경기 뒤 김현우가 매트에 깐 태극기를 부여잡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3-6으로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5초 전. 김현우(28·삼성생명)는 로만 블라소프(러시아)를 상대로 기적처럼 들어던지기 기술을 성공시켰다. 김현우가 심판을 향해 네 손가락을 펴 보이며 “4점”이라고 외쳤다. 매트 밑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안한봉 감독도 역전임을 확신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그러나 심판은 2점을 선언했다. 기막히다는 듯 안 감독은 즉시 비디오 분석(챌린지)을 요청했다. 하지만 심판진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결과는 5-7 김현우 패.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현우가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리우올림픽 첫 경기, 16강전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안 감독은 매트로 뛰어나와 통곡했다.
누구라도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현우는 15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 2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경기에서 패자부활전을 거쳐 기어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가 끝난 뒤 김현우는 매트에 대형 태극기를 깔고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4년간의 힘든 훈련 과정이 떠오르는 듯했다. “4년 동안 올림픽만 보고 훈련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한 그는 “내가 경기를 하는 날이 광복절이라 금메달만 바라보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공동취재구역으로 나온 김현우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상대인 보조 스타르체비치(크로아티아)에게 파르테르를 내준 뒤 두 차례 연속 옆굴리기를 당하다 오른팔을 잘못 디뎌 팔꿈치가 탈골된 것이다. 그러나 김현우는 경기 중 팔이 빠진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팔 상태에 대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알 것 같다”며 “탈골이 됐다가 들어갔는데 인대가 손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그런 제자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판정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 했겠냐”며 울분을 토해내던 안 감독은 “현우가 울면서 ‘죄송하다’고 해서 나도 현우한테 ‘미안하다’고 하면서 같이 울었다”고 했다. 김현우는 그럼에도 “내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돌아가서 부족한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훈련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런던올림픽 직전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자,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고 말한 뒤 이를 몸소 증명한 악바리로 유명하다. 김현우의 이 말은 이후 태릉선수촌 레슬링 훈련장의 슬로건이 됐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김현우는 어린 시절부터 ‘힘장사’란 소리를 들었다. 주변의 권유로 중학생 때부터 레슬링을 시작했다. 이후 불과 10년이 채 안 된 2010년 선배들을 물리치고 처음 태극마크를 달더니 2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런던 대회가 끝난 뒤엔 체급을 66㎏급에서 75㎏으로 올렸다. 체급 조정은 김현우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75㎏급으로 출전한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해내며 명실상부한 동급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이날 안 감독은 16강전이 끝난 뒤 세계레슬링연맹(UWW)에 판정 결과를 제소하겠다고 밝혔으나 입장을 곧 바꿨다. 그는 “승부를 뒤집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경기에 피해가 될까 봐 제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안 감독은 “현우를 교훈 삼아 (류)한수도 새로운 각오가 섰을 것”이라며 “어차피 러시아 선수를 넘어야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안 감독은 “세계레슬링연맹 실무 부회장이 러시아 사람”이라며 “힘이 없으면 지고, 있으면 이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리우데자네이루/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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