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동메달리스트 이대훈이 9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독자들에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9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에스비에스>(SBS) 사옥에서 만나 리우올림픽 이야기를 나누던 태권도 국가대표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은 마시고 있던 스무디 음료수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다른 스무디를 먹었으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어 이런 생각들을 혼자서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인생의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서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던 이대훈은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68㎏급 8강전에서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대훈은 경기가 끝난 뒤 아부가우시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러자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찬사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던 경기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는 걸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알게 됐다”는 그는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누가 더 경기를 즐겼는가’ 하는 점. 이대훈은 “상대는 경기장의 공기와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부분에서 나보다 앞섰다”며 “때문에 상대도 기쁘고 나 역시 져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상대의 손을 들어 올려준 것뿐”이라고 했다. 이후 이대훈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국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려한 외모에 출중한 실력까지 갖춘 스타성 때문에 이대훈은 리우올림픽 이후 각종 매체의 섭외 대상 1순위에 오르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물론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이같은 환영도 한 달 뒤부턴 천천히 식어갈 거란 걸 안다”며 “내 외모를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태권도가 아니었다면 난 주목받지 못했을 사람”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러니까 이대훈에게 중요한 건 메달이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실전에서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주었는지 여부다. “2012년 런던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을 땐 지금보다 더 큰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는 이대훈은 “당시엔 결과에 신경쓰느라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면서 은메달을 얻고도 편치 않은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4년을 돌아봤다.
이대훈 선수의 자필 사인.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래서 이대훈은 “리우에선 메달에 연연하지 말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고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올림픽에서도 태권도를 향해 “재미없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이대훈은 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메달을 위해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보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재미를 위해 뒷발을 더 자주 사용했다. “재미와 성적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어요. 각자 판단에 달린 문제겠죠. 다만 이번 기회로 태권도에 대한 팬들의 인식을 바꿔드리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뿐이에요.”
이대훈은 현재 연세대 대학원에서 스포츠레저를 공부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조금 다른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태권도를 하다가 주변 분야를 파고들다 보니 계속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 그중에서도 그는 독서를 즐기지만 ‘공부가 반드시 책과 연필을 가지고 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변화에서도, 함께 훈련하는 동료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다 배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도 역시 “성실함과 배움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대훈은 이따금씩 “독립영화관을 찾는다”고 했다. 지나간 명작을 다시 상영해주는 경우가 있어서다. 흘러간 명작들 중엔 자신이 그동안 보아내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이 숨어 있고, 이를 발견해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대훈과의 인터뷰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올림픽을 떠나서도 항상 견지해야 할 덕목들, 예컨대 평상심과 호기심, 성실함과 배움에 대한 것들 말이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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