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카터(31)는 2016 리우올림픽에서 미국 여자 선수 사상 최초로 포환던지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우승은 아버지 마이클 카터의 발자취를 따라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미식축구(NFL) 선수이기도 했던 마이클 카터는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포환던지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 스포츠 역사상 부녀가 올림픽 메달을 딴 경우는 카터 부녀가 최초”라고 했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어온 미셸은 포환던지기 선수만은 아니다. 평소 미용 용품을 파는 작은 온라인숍을 운영하면서 자격증까지 갖춘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미셸은 여러 인터뷰에서 “운동선수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둘 다 나의 모습”이라며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미셸처럼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 선수 중에는 별도 직업을 갖고 있는 이가 꽤 있다. 팝가수 비욘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모델(육상 케런 클레멘트)을 비롯해 초등학교 선생님(사격 에밀 밀레프), 대학 수학 교수(마라톤 재러드 워드), 부동산 중개인(체조 앨릭스 내도어)도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미국 <폭스 스포츠>,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따르면 이들에게 ‘운동선수’는 부업일 뿐이다.
미국 선수 최초로 히잡을 쓰고 펜싱 사브르 대표팀으로 출전해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건 이브티하즈 무하마드(31)도 마찬가지다. 무하마드는 2014년 자신의 할머니 이름을 따 ‘루엘라’라는 자신의 고유 의류브랜드를 론칭한 의상디자이너다. 무하마드는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입을 만한 (무슬림) 옷이 많지 않았고,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브랜드를 론칭한 이유를 밝혔다.
펜싱 플뢰레 남자단체전 동메달리스트인 미국의 게릭 마인하트(26·세계 4위)는 컨설팅 회사(딜로이트)에서 근무하는 애널리스트다. 9살 때 펜싱을 시작한 그는 노터데임대학에 전액 펜싱 장학생으로 입학해 펜싱을 하면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경영학 석사 학위(MBA)까지 갖고 있다. 평소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훈련하고 출근하는 게 그의 일과지만, 올림픽을 앞두고는 회사에 양해를 구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전화상담만으로 일을 했다. 출장 갈 때는 일 처리를 마치고 근처 체육관을 수소문해 저녁 훈련을 소화했다. 운동과 일을 병행하는 이유에 대해 마인하트는 “평생 펜싱 선수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미국 선수들이 선수생활 중 운동 외적인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 미국올림픽위원회(USOC)가 주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없기 때문도 있다. 미국올림픽위원회가 선수들을 국제대회에 출전시키고 훈련 비용을 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광고 수입이나 기업 후원을 통해 부유한 삶을 누리는 마이클 펠프스(수영)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선수는 틈틈이 시간제 근로를 하거나 펀딩 활동으로 훈련 자금을 마련한다. 육상 10종 경기 선수인 제러미 타이워 또한 지난해 12월 ‘고 펀드 미’에 사연을 올려 현재까지 6만3375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타이워와 같은 미국 선수가 수십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펀딩 활동도 선수생활을 할 때만 가능하다. 은퇴 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 선수 직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레슬리 클라인은 “선수들이 한 가지 일(운동)에만 집중한다면 분명 당장은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상태에서 은퇴한다면 더 힘겨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대표급 전문 스포츠 선수여도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스탠퍼드대학 출신의 수영선수 마야 디라도(23)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끝나면 수영선수 대부분은 ‘세계여행이나 하면서 푹 쉬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여유가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생애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건 디라도는 곧바로 은퇴해 9월부터 컨설팅 회사(매킨지)에서 근무하게 된다.
미국 선수들을 차치하고라도 유도 여자 48㎏급 결승에서 한국의 정보경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파울라 파레토(30·아르헨티나)는 의대를 졸업한 전문의다.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해도 좋은 결실을 거둔 사례라고 하겠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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