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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등록 2016-08-21 14:55수정 2016-08-21 18:51

아시아 최초 올림픽 리듬체조 4위 손연재
런던올림픽 5위서 한 단계 끌어올려
결선 오른 10명 서로 끌어안고 눈물
“손가락 꼽는 선수 되는 꿈 이뤄 기뻐”
손연재가 21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레나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4위로 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손연재가 21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레나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4위로 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리본 연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손연재는 전광판으로 자신의 최종 점수를 확인한 뒤 담담한 표정으로 선수 대기석으로 향했다. 손연재가 리본에서 받은 점수는 18.116점. 리듬체조 4종목 중 가장 낮았다. 손연재는 직감한 듯했다. 자신이 4위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하게 될 것을. 즉, 메달과는 이미 멀어졌음을.

대기석에서 손연재는 금·은메달을 사실상 결정지은 마르가리타 마문, 야나 쿠드렴체바(이상 러시아)와 포옹을 나눴다. 이어 자신의 동메달 경쟁 상대인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의 마지막 연기를 지켜봤다. 리자트디노바는 리본에서 손연재와의 격차를 더 벌리며 3위를 확정지었다. 손연재는 리자트디노바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둘은 뜨겁게 끌어안았다. 손연재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손연재(22·연세대)가 21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에서 후프(18.216점)-볼(18.266점)-곤봉(18.300점)-리본(18.116점) 4종목 합계 72.898점으로 4위를 기록해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예상대로 1위는 마문(76.483점), 2위는 쿠드렴체바(75.608점), 3위는 리자트디노바(73.583점)가 차지했다. 4년 전 런던에서 5위를 기록한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올림픽 최종성적을 한 계단 끌어올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날 최종 결선에 오른 10명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좀처럼 체조장을 떠나지 못했다. 서로 끌어안고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손연재는 “끝나니 그냥 눈물이 났다. 러시아 선수들과 인사할 때도 눈물이 났지만 리자트디노바도 울고 있어 같이 눈물이 났다”며 “큰 무대에서 경쟁해야 했지만 끝나면 다 같은 마음이다. 같이 고생했으니까 서로 껴안으며 축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연재가 20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결선에서 모든 연기를 마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다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손연재가 20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리듬체조 결선에서 모든 연기를 마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다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손연재는 이후 감정을 추스른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힘든 것밖에 없었다”며 “(준비 과정에서) 그만하고 싶단 생각이 하루 수십번 들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 싸워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눈물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 손연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운동을 접을 생각이었다. 양 발이 뒤틀리고 골반, 발목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건 자신의 의지보다 주변의 권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고된 훈련이 계속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웠다고 했다. 손연재는 전날 예선을 5위로 통과한 뒤에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며 “메달을 안 따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손연재가 느낀 이런 부담감은 그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비례해 커져갔다. 한국 리듬체조는 이번 대회에서 손연재의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4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당시 손연재가 런던올림픽에서 리듬체조 결선에 오른 건 하나의 대사건이었다. 한국 리듬체조가 올림픽 결선 무대를 밟은 건 손연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리듬체조는 러시아와 동유럽의 전유물이었다. 아시아 선수가 개인전 메달을 딴 사례도 아직 없다.

손연재가 이번 올림픽 4위에 오르기까지 리듬체조 불모지 한국에서 그는 늘 개척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래서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 6살에 리듬체조를 시작한 손연재는 2010년 성인무대에 데뷔해 그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2010년 세계선수권 개인종합에선 32위에 그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했고 곧바로 리듬체조 강국인 러시아로 날아가 훈련했다. 그 효과는 바로 빛을 발했다. 손연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런던에 이어 리우까지, 올림픽 2회 연속 결선 진출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세웠다.

메달을 따내진 못했지만 경기 뒤 손연재는 메달리스트들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한국 취재진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 언론들도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차분히 자신의 리듬체조 인생을 돌아본 손연재는 그제야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손연재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장에 올림픽을 포함해 세계대회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며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꿈을 이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지막 올림픽이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준비했다. 후련하기도, 행복하기도 하다.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리우데자네이루/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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