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신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한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21일 오후 기자회견장인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 서울홀로 들어서고 있다. 전 교수 뒤로 88서울올림픽 엠블럼이 보인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쇼트트랙 대부’에서 ‘빙상계 적폐’로….
전명규(56) 한국체대 교수(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게 따라붙는 과거와 현재의 수식어다.
젊은빙상인연대와 손혜원 의원이 21일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가해 코치들이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 휘하 사람들”이며 “빙상선수들은 그(전명규 교수)가 자기 측근의 성폭력 사건 은폐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폭로하자, 전 교수는 곧바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전면 부인했다.
전 교수가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해 12월 교육부로부터 중징계를 요구하는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빙상계 적폐’로 내몰린 이후 처음이다.
전명규 전 부회장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서울체고와 한국체대를 거쳤고, 1985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는 1987년 24살의 이른 나이에 은퇴와 함께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맡았다. 때마침 쇼트트랙은 1988년 캘거리 대회에서 비록 시범종목이었지만 우리나라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어 쇼트트랙은 4년 뒤 알베르빌 대회부터 지난해 평창 대회까지 8번의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21개를 포함해 42개의 메달을 따내며 중국, 캐나다,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쇼트트랙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 올림픽은 ‘여름 양궁, 겨울 쇼트트랙’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고, 쇼트트랙의 영광 뒤엔 언제나 전명규 전 부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김기훈, 김동성, 김소희, 전이경, 빅토르 안(안현수) 등 한국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대부분 그의 제자다.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2014년 2월17일 러시아 소치에서 스피드스케이팅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몬트리올/ 연합뉴스
전 교수는 ‘타고난 승부사’라는 평가답게 겨울올림픽 때마다 빼어난 성적을 냈고, 빙상연맹은 이런 전 교수의 실적을 높게 평가했다. 한 빙상인은 “빙상연맹은 전 교수가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척척 따내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이러면서 전 교수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 겨울스포츠 종목 가운데 쇼트트랙만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전 교수는 개인 종목인 쇼트트랙에 팀플레이를 도입하고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스케이팅 주법을 도입해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성과 뒤에 숨어있던 훈련과정의 문제가 점차 드러났다. 전 교수의 금메달 전술은 이른바 ‘작전’이다. 특정 선수를 우승시키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경쟁국 선수들의 진로를 막거나 ‘페이스 메이커’로 나서게 하면서 내부 불만이 터져나왔다. 전 교수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선수들은 다른 경쟁 선수들을 막아주는 이른바 ‘폭탄조’로 투입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했고, 여기서 파벌이 싹텄다고 빙상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빙상계의 고질적인 파벌은 전 교수 중심의 ‘한체대파’와 반대쪽인 ‘비체대파’로 나뉜다. 반대파는 주로 경희대와 단국대 출신들이다.
2006년 2월,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대표팀은 남녀 5명씩 10명의 국가대표로 구성됐지만 남자팀 코치 아래 6명(남 4명· 여 2명)이, 여자팀 코치 아래 4명(남 1명·여 3명)이 따로 훈련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코칭스태프는 “훈련 성과를 배가시키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두 파벌로 나눠져 훈련한 것이었다.
토리노 대회에서 역대 겨울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 6개를 따내면서 흐지부지될 뻔했던 쇼트트랙 파벌 문제는 ‘안현수 사건’이 터지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안현수는 그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지만 반대 파벌의 동료 선수가 안 선수의 주로를 방해하는 ‘왕따’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대표팀이 귀국하던 날, 인천공항은 이에 항의하는 안현수 아버지와 관계자들의 고성이 오가며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안현수는 러시아로 귀화해 제2의 쇼트트랙 인생을 개척했고, 2014 소치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반면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사상 처음으로 ‘노골드’에 그쳤다. 이후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과정이 재조명되면서 당시 빙상연맹 부회장이던 전 교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전 교수는 2017년, 3년 만에 연맹으로 복귀했다. 빙상연맹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전 교수에게 다시 부회장직을 맡기면서 쇼트트랙은 물론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역할을 맡겼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나서 빙상계 파벌 문제를 조사하라고 지시한만큼 전 교수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케 했다.
논란은 평창올림픽에서도 불거졌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장거리 간판’ 이승훈이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정재원(동북고)에게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전 교수가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결국 전 교수는 지난달 5일 교육부로부터 두 차례의 사안 조사 결과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 감사 결과를 종합해 중징계를 요구받았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체대 빙상장을 특정 선수들에게 사용하게 했고, 조교에게 학교발전기금 기탁과 골프채 구매 비용 대납을 강요했다는 혐의다.
전 교수는 2002년부터 맡고 있는 한국체대 교수직도 위태롭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수직 사퇴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가혹행위에 가까운 훈련 중 폭력과 성폭력까지, 메달이 빛깔에 가려졌던 빙상계의 민낯이 드러나며 빙상 대부도 추락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