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시청 앞에서 도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 이달고 파리 시장과 토니 에스탕게 파리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이 오륜기 게양식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여름올림픽은 오는 2024년 파리에서 개최되는데 팬데믹 이후 첫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1위.
스포츠에서나 비스포츠에서나 왕관의 무게는 무겁다. 특히 ‘당연한 1위’나 ‘우승 0순위’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더욱.
하지만 지난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세계 순위가 무색했다. 수많은 ‘세계 1위’ 선수들이 오랜만에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겨뤄 쓴 잔을 들이켰다. 마냥 ‘최대 이변’이라거나 ‘언더도그의 반란’, 그리고 ‘올림픽 징크스’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6관왕이 기대됐던 ‘체조 천재’ 시몬 바일스(미국)는 무관(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그는 올림픽 이전부터 정신적인 부담감을 토로했었다. 태권도 레전드로 불리는 이대훈은 올림픽 첫 경기에서 졌다. 이대훈을 68㎏급 16강전에서 이겼던 울루그베크 라시토프는 우스베키스탄에 태권도 첫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68㎏급에서는 세계 순위도 없던 무명 선수였다. 복싱에서도 ‘세계 챔피언’이라고 불렸던 선수들이 줄줄이 패배를 맛봤다.
육상 남자 110m 허들에서는 세계 1위 그랜트 홀러웨이(미국)가 핸슬 파치먼트(자메이카)에게 불과 0.05초 차이로 왕좌를 내줬다. 파치먼트는 2012 런던올림픽 때 3위에 올랐지만 2016 리우올림픽이나 2019 세계육상선수권 때는 본선에 출전조차 못했다. 판정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리듬체조 개인종합에서는 이스라엘의 리노이 아쉬람이 ‘우승 0순위’ 러시아의 디나 아베리나를 제쳤다. 러시아는 2000 시드니올림픽 이후 21년 만에 리듬체조 왕좌를 다른 나라에 내줘야만 했다.
물론 메달이, 입상이 전부는 아니다. 다만 그 이면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팬데믹은 전세계 스포츠를 1년 넘게 멈춰세웠다. 프로리그는 무관중으로 겨우 유지됐지만, 아마추어 종목은 국제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서로의 기량을 파악할 기회가 극히 적었다.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대륙별 선수권이나 월드컵,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일례로 이번에 두각을 나타낸 황선우(수영)나 서채현(스포츠 클라이밍) 등은 1년 반 넘게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선수들은 국경 폐쇄로 국외 훈련이 아닌 국내 훈련을 이어가야 했고 최악의 경우에는 집 안에서 몇 주씩 격리생활을 해야만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라는 말도 있지만 ‘지피’(상대를 아는 것)를 할 기회는 거의 없었고 ‘지기’(나를 아는 것) 또한 녹록지 않았다. ‘백전불태’가 나올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는 얘기다. 팬데믹이 승부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운 감이 없지 않다.
세계 정상급 선수(혹은 국가)의 올림픽 불운과 부진을 보면서 ‘함께’의 의미를 되새겼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같은 곳에서 함께 겨루고, 함께 분발하고, 함께 도약하는 것이 결국 ‘스포츠’인 것이다. 그 대상이 세계 1위든, 세계 꼴찌든 말이다. 물론 ‘함께’ 공존해야만 하는 것이 비단 스포츠만은 아닐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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