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지 대표팀 선수 임남규.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뼈가 드러났다. 병원에 실려 간 그는 운동을 시작한 뒤 처음 눈물을 흘렸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피땀 흘려 준비한 올림픽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울었다.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지난해 마지막 날. 그는 낯선 땅 독일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렵게 내린 결론은 귀국이었다. 루지 국가대표 임남규(33)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그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루지연맹(FIL)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 도중 루지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전복됐고, 정강이뼈가 보일 정도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피부가 12cm 정도 찢어졌다. 병원에선 머리 신경을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루지는 애초 헬맷만 쓰고 맨몸으로 썰매를 타는 데다, 최고속도가 150㎞에 달해 부상 위험이 크다.
올림픽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친 몸으로 도저히 베이징까지 가는 굴곡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2018년 평창 대회 뒤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했던 그였다. 올림픽에 대한 그리움과 대한루지연맹 요청에 현역 복귀까지 했지만, 더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부상과 올림픽 불참 소식을 알렸다. “우리 루지팀 선수들 올림픽까지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라고 적었다. 짐짓 의연해 보였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임남규가 부상 소식과 함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사진. 임남규 인스타그램 갈무리
포기의 문턱에 선 그를 일으킨 건,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었다. 특히 1월에 열리는 두 대회만 참가하면 출전 포인트를 쌓아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그에게 희망을 줬다. 여전히 몸이 아팠지만, 뼈가 드러난 상처보다 뼛속 깊이 사무친 열망이 그에겐 더 간절했다. 그렇게 그는 귀국 3일 만에 다시 월드컵이 열리는 라트비아로 향했다. 칭칭 감은 붕대, 목발과 함께였다.
다시 무대에 섰지만, 진출권 획득은 쉽지 않았다. 상처는 물론 사고에 대한 기억도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루지는 하늘을 보고 누운 상태로 썰매를 탄다. 더욱이 다친 다리를 정면에 둬야 한다. 루지가 ‘공포의 썰매’라고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고, 결국 베이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인스타그램에 “나의 두 번째 올림픽? 이거 실화 맞나?”라고 썼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올림픽을 그렇게 열망했던 건, 평창의 기억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우연히 루지를 시작했다. 대학교 후배들이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 루지 국가대표로 출전한 걸 보고 선발전에 지원했다가 덜컥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렇게 시작한 루지 덕분에 그는 평창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임남규는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던 순간, 많은 분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환호해 주신 순간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임남규가 5일 중국 옌칭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루지 남자 싱글 런 1차 시기에서 주행하고 있다. 옌친/DPA 연합뉴스
임남규는 5일 중국 옌칭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루지 남자 싱글 런 1·2차 시기를 마친 뒤 손으로 크게 하트를 그려 보이며 웃었다. 34명 가운데 33위(총합 2분2초232)였지만, 그는 여느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신다면, 루지를 하면서 했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행복할 것 같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이뤄졌을지 모른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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