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규가 12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서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금메달 노렸는데, 아쉽다.”
‘불굴의 사나이’ 차민규(29·의정부시청)가 12일 베이징겨울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34초39를 기록하며 올림픽 두 대회 연속 은메달을 일궜다. 올림픽 남자 500m 스프린트에서 연속 메달을 획득한 이는 국내에서 차민규가 처음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에게 밀려온 것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다.
차민규는 경기 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와 한 인터뷰에서 “평창 대회에서는 나도 은메달을 딸 줄 몰랐다.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우승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차민규는 이날 100m까지 9초64를 기록했지만, 두 개의 코너를 돌아야 하는 나머지 400m 구간 랩타임(24초75)에서는 30명 중 1위였다.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그가 주행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1위를 차지한 중국의 가오팅위(34초32)와는 0.07초 차이가 난다. 평창에서는 0.01초 차이로 은메달을 땄어도 쿨하게 넘어갔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미련이 남는다.
차민규는 올 시즌 월드컵 랭킹 11위로 10위 밖에 있었다. 월드컵 1차 대회 첫 레이스에서 18위에 그치면서 2부 리그로 밀려나기도 했다. 발목이나 골반이 좋지 않았고, 스케이트 날 등 장비 관리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은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차민규는 골반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보강 치료 때문에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장비 문제가 생기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한국 선수단에서도 차민규의 입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12일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시상대에서 선 차민규(왼쪽부터), 가오팅위, 모리시게 와타루 등 시상대를 점령한 아시아 단거리 3인방. 베이징/연합뉴스
하지만 멘털이 강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차민규는 불굴의 투지로 몸을 만들었다. 특히 장비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으면서 자신감을 충전했다. 차민규가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전 두 세트의 스케이트 날을 챙겨준 장철 전 평창겨울올림픽 한국팀 장비코치는 “대회 직전에도 영상 통화로 서로 장비 점검을 해왔다”고 밝혔다.
장철 코치가 해준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차민규의 스케이트 슈즈와 날을 선수의 체형과 주행 습관에 맞게 중심선을 최적화하도록 맞춰주었다. 코너를 돌 때 원심력을 활용하도록 날을 휘어주는 벤딩 기술도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스케이트 날의 바닥을 갈아주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날이 얼음에 닿는 부분이 선수마다 앞이나 가운데, 뒤 쪽 등 특정 부분에 치우쳐 있고, 얼음 상태에 따라서도 방법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 코치는 “센터를 맞춘 것은 고정돼 있고, 벤딩은 미세하게 풀어질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날은 현장 상황에 맞게 영상통화를 통해 선수가 직접 갈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의 코치진도 최선을 다해 대표선수들을 돕고 있지만, 선수마다 장비 특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요구를 다 맞춰줄 수가 없다. 제갈성렬 감독이 “만약 지난해 말 월드컵 시리즈 때부터 완벽한 장비로 경기에 임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제 500m 경쟁은 끝이 났고, 18일 김민석(23·성남시청)과 함께 출전하는 남자 1000m 경주에 집중해야 한다. 토마스 크롤 등 쟁쟁한 네덜란드 선수들이 버티고 있지만, 상승세를 탄 차민규의 메달권 도전 의욕도 매섭다.
최재봉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는 “차민규는 큰 경기에 강한 대기만성형이다. 자기 루틴이 확실하고 노력과 연구를 많이 한다. 1000m에서는 좀 더 편하게 달릴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