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억.”
고막을 찢을 듯한 외침. 순간 온몸의 감각은 중계진 목소리에만 반응한다. 경기를 막 끝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수의 감정에 스며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계석 내 해설위원들의 몸동작도 다분히 호들갑스럽다. “야!” 같은 반말도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개인 유튜브 방송도 아니고 지상파 올림픽 중계 모습이 이렇다.
반환점을 돈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방송 해설엔 깊이 있는 경기 분석이나 설명보다는 감정만 넘쳐난다. 방송 3사가 앞다투어 선수 출신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한 가운데 전문적 해설을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후배, 혹은 제자의 경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해설가인지, 응원단인지 구분이 안 될 때조차 있다.
더러 선수보다 더 튀려는 중계진도 보인다. 올림픽의 ‘별’은 응당 선수여야 하건만, 말장난 등으로 스스로 이슈 메이커가 되려고 한다. 방송 3사가 동시에 같은 종목을 중계하는 터라 차별점을 두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데시벨은 높아지고 눈물은 넘쳐난다. 스포츠 감동을 전할 때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전달 방법이 될 터인데 너도나도 순간적 감정 배설에만 충실하다.
감정 과잉의 해설이 엠제트(MZ)세대 맞춤형 중계라는 시선도 물론 있다. 실제로 댓글 등을 보면 “재밌다”는 반응이 꽤 된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기에도 이만한 콘텐츠가 없다. 과한 몸동작과 직관적 외침은 ‘짤’이나 ‘밈’ 생성에 아주 용이하기 때문이다. ‘스포테인먼트’라는 말이 있듯이 스포츠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올림픽은 예능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고 절박한 현실의 무대다.
방송 기저에 짙게 깔려 있는 ‘메달 우선주의’도 조금은 거북스럽다. 쇼트트랙 여자 1000m 2위 최민정의 폭풍 오열을 금메달을 못 딴 데 따른 아쉬움의 눈물로 단정 짓는 식이다. 13일 밤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가 끝난 뒤에도 그랬다. 김민선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시상대에 서지 못해 아쉽지 않으냐”는 식의 질문들이 나왔다. 사실 김민선의 이날 성적은 평창 때보다 기록 면이나 순위 면에서 훨씬 나았다. 그간의 피땀 눈물로 일궈낸 뜻깊은 성과인데 방송은 그저 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로만 몰아가는 듯했다.
스포츠는 선수의 시간이다. 심판의 시간도, 방송의 시간도 아니다. 스포츠는 오롯이 선수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경기가 끝난 뒤 시청자의 뇌리에 남는 게 중계진의 사자후 외침이어서는 안된다. 그 순간 스포츠는 쇼가 되고, 선수는 들러리로 전락한다. 적정선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고 스포츠 중계도 마찬가지다. 해당 종목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적당한 템포 조절로 그 종목, 그 자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운동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의 몫일 것이다. 경기 내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게 과연 해당 종목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도통 납득이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스포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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