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장마술 대표 김치수가 26일 중국 항저우 퉁루승마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개인전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항저우/AFP 연합뉴스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승마 대표팀이 주 종목인 마장마술에서 1986년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한국 대표팀은 26일 중국 항저우 퉁루승마센터에서 열린 마장마술 프릭스세인트조지 단체전 결선에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최소 3명, 최대 4명이 참가하는 마장마술 단체전은 개인전에서 받은 점수 중 가장 높은 3개 점수를 추린 뒤 평균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데, 김혁(28)이 개인전에서 실권 처리되면서 단체전 최소 출전 인원인 3명을 채우지 못했다. 개인전에서도 3위 안에 단 한 명도 들지 못했다. 한국이 마장마술 종목에서 개인·단체전을 포함해 아시안게임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것은 1986년 서울 대회 때 마장마술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처음있는 일이다.
마장마술은 ‘승마의 발레’라고 불리는 종목으로, 음악에 맞춰 기수가 말을 컨트롤해 연기를 펼쳐 보이고, 이 과정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말을 다룰 수 있는지를 겨루는 종목이다. 필수 동작의 정확성이나 자연스러움 등을 평가한다. 개인전의 경우 기수 성별에 따라 경기를 따로 치르지 않고 남녀가 함께 경쟁을 벌이는 점도 특징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딴 김혁은 이날 10위권 안팎의 성적을 받았지만, 연기가 끝난 직후 함께한 말의 입가에서 핏자국이 발견돼 실권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장마술에서는 동물 보호 차원에서 말의 신체 어느 부위에서든 피가 흐르는 것이 발견되면 기수를 실권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혁이 실권 처리되면서 한국 대표팀은 김치수(28), 이수진(36) 등 2명 밖에 남지 않아 단체전 출전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마장마술 부문 1위를 차지한 남동헌(35)이 출전하지 못한 게 뼈아팠다. 남동헌은 마장마술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말이 대회 직전 부상을 당하면서 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마장마술은 한때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메달밭이었다. 승마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던 1990년 베이징 대회와 검역 절차에 가로막혀 현지에서 말을 대여해 경기를 치렀던 1994년 히로시마 대회를 제외하면 단체전에서 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나 2017년 국정농단 사태 때 승마(마장마술) 선수 정유라(최순실의 딸)에 대해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뇌물성 특혜 지원을 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이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며 협회는 운영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이번 대회에 앞서서는 1억원에 달하는 말 운송비를 대표 선수 자비로 부담하라고 해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승마협회 관계자는 “이번 대회를 위해 전세기를 대여해 말 8마리를 운송하는 데 6억원 정도가 드는데, 이 비용은 협회에서 어떻게든 마련해 부담하기로 결정하고 백방으로 자금을 구하고 있다”면서도 “80% 정도는 구한 상태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 후원을 구하기가 어려워 선수들에게까지 불가피하게 부담을 나눠서 지도록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말 운송비를 제외한 부대 비용은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검역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나 현지에서 건초를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선수들이 부담하기로 협의했고, 향후 후원금 조달 상황에 따라 비용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마장마술 대표팀에는 상처로 남는 아시안게임이 됐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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