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서 고우 스님과 박희승 불교인재원 교수(사진 왼쪽)
화두선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로 이끄는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한다. 즉 즉시 본래부처임을 깨닫게하는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차별의 이원을 극복한 화두선승들의 선어(禪語)는 세간인들에겐 외계언어쯤으로 들릴 뿐이다. 그래서 지고의 수행 또한 세간인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뿐이다. 무차별의 언어가 들리지않는 벽창호같은 세간인을 바라보는 선승도 답답하고, 알듯모를듯한 말만 내뱉는 출세간의 선승을 바라보는 세간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북 봉화 문수산 금봉암의 고우스님(83)은 열린 스님으로 손꼽힌다. 피차일반의 답답증을 해갈시켜주는 선승인 때문이다.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이 <간화선> 지침서를 발간하기 위해 찾아가 가장 많이 이야기를 들은 이도 고우 스님이고, 공생선원 무각 스님을 비롯해 법랍 15년이 넘은 승려들의 공부모임인 경전연구회가 10년간 가장 많이 청해 설법을 들은 이도 고우 스님이었다. 또한 조계종 ‘자성과 쇄신운동본부’가 선(禪)을 세상사에 적용하기 위해 법을 청해 들은 이도 그였다.
그 고우 스님의 법설이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어의운하 펴냄)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지난 18년간 고우스님을 스승으로 참선을 수행했던 불교인재원 박희승 교수(56)가 정리했다. 조계종 총무원 종무원이던 그는 2002년 종단 내분으로 인한 심적 괴로움에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겹쳐 마음이 심란해지고 불교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어 도법 스님에게 산중 선지식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고우 스님을 추천 받고 찾아갔다. 그래서 6시간 동안 쏟아낸 평소의 의문에 고우 스님이 답해주자 막힌 속이 뚫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고우 스님의 충실한 재가제자가 된 그는 18년을 불원천리하고 봉화를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해 이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몇해 전부터 고우 스님이 경증인지장애로 기억력이 급속히 약해지자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법문집을 서둘러 정리해 펴낸 것이다.
박 교수는 조계종 유일의 종립선원인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지난해 말 입적한 수좌 적명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선승들의 모임인 선원수좌회가 건립을 주도한 문경세계명상마을 사업국장을 맡아 건립실무를 총괄하면서 조계사 인근 불교인재원에서 기업과 공무원 등 일반 시민들에게 생활참선 입문-심화-전문-지도사 프로그램으로 지도하고 있다. 박 교수가 가장 먼저 들려준 것은 고우 스님이 절에 열심히 다니며 식당 하는 보살(여성 신도)에게 해준 이야기다.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지식 한명으로 꼽히는 고우 스님
“손님을 돈으로 보지 말고 은인으로 보고 장사해보세요. 왜, 은인인가? 손님, 고객 덕분에 직원들 월급 주고, 가겟세 내고, 가족들 먹여 살리고, 아이들 교육시키고 문화생활하고 저축도 하니 손님이 은인입니다. 그러니 식당에 오는 손님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하시고 장사해보세요.”
이 보살은 한 달 후에 고우 스님에게 밝은 얼굴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스님, 장사가 대박입니다.”
고우 스님은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인과 손님의 양변에서 장사하는 것은 분별이나, 손님을 은인으로 부처님으로 생각하며 장사한다면 장사가 안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네가 둘이 아니라는 중도를 바로 알아 일상생활에서 중도를 실천하면 대립과 갈등을 해소해 갈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고우 스님이 이 책에서 수미일관하게 강조하는 것이 이 장면에 다 담겨 있다고 한다. 바로 나와 너, 빈부, 갑을, 노소, 남녀, 노사, 좌우, 남북, 여야 등 우리들이 일상에서 쉽게 빠지는 이분법의 함정, 극단의 치우침 등은 모두 양변이기에 이런 양변(兩邊)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개인이 행복하고 또 사회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우 스님은 시골에 작은 식당 운영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표(CEO)에게도 고객과 직원을 은인으로 보고 경영을 해보시라 하여 큰 성취를 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주인과 고객, 노와 사, 나와 너라는 양변을 떠난 중도의 길이 바로 지혜의 길이고 잘 사는 길이며, 영원한 행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중도의 길, 영원의 행복의 길일까. 고우 스님의 특장은 자칫 ‘무조건 깨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게 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불법의 핵심인 중도, 연기를 깨닫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나’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 불교를 제대로 이해해야 의식이 바뀌고 의식이 바뀌어야 바른 가치관이 정립된다. 바른 가치관이 서야 이기적이고 욕심만 챙기며 개인과 세상을 망치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야 자신과 세상을 동시에 살리는 불보살의 삶으로 회귀할 수 있다.”
이것이 고우 스님이 늘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팔만대장경에 담긴 장대한 불법의 핵심을 이렇게 간략히 요점 정리한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란 누구냐? 깨달은 분이다. △무엇을 깨달았는가? 중도를 깨쳤다. △중도란 무엇인가? 대립하는 양 극단에 집착하지 않고 가운데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중도는 곧 팔정도를 말한다. 팔정도 중에서도 정견이 바로 서야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중도정견의 안목을 갖춘 사람은 삿된 길을 버리고 남을 돕는 바른 안목으로 지혜와 자비의 삶을 실천하여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간다는 게 고우 스님의 가르침이다. 고우 스님은 ‘중도가 연기다’란 제목으로 깨달음의 핵심인 중도(中道)와 연기( 緣起)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경계에 집착하고 분별하지만 여래는 양변을 떠나 중도를 말했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고 연기를 말했다. 이것이 중요한데 중도가 곧 연기라는 말이다. 연기는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여 있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이 서로서로 의지해서 존재한다는 존재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 우주 만물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다. 이것이 진리며, 법칙과 같은 것이다.”
고우 스님은 “이 세상은 연기로 존재한다는 것이 불교의 답”이라며 “자기자신과 세상 만물이 중도연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정견이 서게 된다”고 한다. 즉 ‘정견이란 연기로 본다는 말이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참선 공부와 실참 등으로 진행되는 불교인재원의 생활참선 프로그램
“연기로 보는 것은 양변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안목이 나온다. 즉 ‘나’라는 존재도 실체도 없는 연기로 존재하고 우주 만물도 본래 연기로 존재할 뿐이다. 연기로 존재하는 나와 우주 만물은 그대로 완전하다. 지금 이대로 나는 부족함도 더러움도 없는 본래 완전하고 청정하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본래 완전하니 나와 너, 생과 사, 늙음과 죽음, 선과 악, 괴로움과 즐거움도 허망한 분별망상일 뿐,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밝고 청정한 본래부처이다. 번뇌와 깨달음도 다 연기이니 ‘번뇌 즉 보리’가 되고, 중생과 부처가 다 연기이니 ‘중생이 본래부처’다. 생과 사도 마찬가지다. 태어남도 연기고 죽음도 연기이니,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니,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한다.”
이렇게 정견이 서면 어떤 괴로움과 재앙도 쉽게 건널 수 있고, 내가 본래 완전하니 중생이란 착각에서 깨어나 부처로 살겠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난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연기를 중도로 보는 정견이 서면, 내가 본래 부처이나 중생이란 착각에 빠져 있으니 이 착각만 깨면 본래부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참선은 우리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즐겁고 행복한 공부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도연기를 이해해서 세상 만물과 자기를 정견하면 자기가 본래 완전한 존재라는 것에 눈을 뜨고, 이를 가로막는 분별망상을 끝없이 비워나갈 지혜와 용기가 나온다는게 고우 스님의 말이다.
고우 스님은 경북 김천 청암사 수도암에 출가해 고봉, 관응, 혼해 대강백으로부터 경전을 배우고, 당대 선지식인 향곡 선사가 주석한 묘관음사에서 첫 안거 수행을 한 이래 평생 참선의 길을 걸었다. 1968년엔 도반들과 함께 봉암사에 들어가 선원을 재건하여 조계종 종립선원의 기틀을 다졌다. 이를 제2 봉암사 결사라 한다. 이미 입적하신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과 함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근대 선지식인 향곡, 성철, 서옹, 서암 선사에게 두루 참문하며 수행했고, 태백산 각화사 동암에서 정진하다가 지금은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 머물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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