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1>(KBS1)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갈무리
#서울 외곽인 북한산 자락 수유동에서 10년을 살다 7개월 전 회사 가까운 데로 이사를 했다. 수유동에서는 마실 삼아 주말이면 늘 둘레길과 산책로, 골목길을 슬렁슬렁 걸어 다녔기에 집 반경 1㎞가량은 손바닥처럼 훤했다. 동네가 내 집의 확대판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걷기에 좋은 길, 쓸쓸할 때 말을 붙여 오는 동네 사람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 좋은 선술집, 입맛이 아무리 없어도 혀를 동하게 하는 단골 식당이 마실 다니는 거리 안에 있었다. 그런데 부도심 인근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낯설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며칠간 길고양이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 봤더니, 웬걸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꽤 쓸만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공원이 있었다. 도심의 재래시장에도 부침개에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는 선술집이 있었고, 허름한 골목엔 할머니들이 직접 담근 김치와 반찬들만을 내놓는, 머지않아 천연기념물이 될 법한 밥집이 숨어 있었다. 이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한국방송1>(KBS1)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7시10분에 방영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자기 동네 한 바퀴를 시청했다면, 오래된 방앗간이나 떡볶이집, 이발소 등을 보고는 ‘우리 동네에 저런 집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눈을 반짝일지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속 표현대로 우리가 사는 동네도 또한 그렇다.
<한국방송1>(KBS1)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갈무리
<한국방송1>(KBS1)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갈무리
<한국방송1>(KBS1)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갈무리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됐지만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으로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집 밖으로, 마을 밖으로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고픈 욕망을 절제하기가 쉽지 않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보여주듯이. 그래서 <로이터> 등 외신이 전해준, 33명이 집안에서 자족하는 코스타리카 대가족의 모습이 부럽다. 이 대가족의 부부는 뇌종양에 걸린 자식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자 평생 사람들을 도우며 살기로 작정하고 적게는 3살부터 많게는 25살까지 31명의 아이를 입양해 함께 살고 있다. 이 가족은 코로나 확산 이후 자가격리하면서 21살 데이비드에게만 유일하게 외출해 생필품을 사 오게 했다. 그가 외출 후 철저히 방역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머지 가족은 집안에만 있지만, 워낙 식구가 많아 즐겁게 어울리며, 오히려 평소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 마을 인근 들판에서 야영하며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경기도 파주 문발동 공방동네사람들.
#이처럼 부러움을 살 만한 곳이 코스타리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고 활력 넘치는 마을공동체를 가꾸어가는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공방마을에서는 코로나가 급격한 확산세를 보일 때도 마을 책방에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책을 사 갈 수 있도록 했고, 평소의 독서토론이 중단되자 온라인 채팅으로 독서모임을 이어갔고, 화려한 립스틱을 칠한 후 인증샷 올리고, 마스크와 뜨개질 가방 등을 만들어 서로 자랑하며 우울증을 떨쳐냈다. 비록 온라인이라도 손에 닿을 듯한 한마을에 사는 이들끼리의 교감으로 고립감이 심하지 않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우리마을공동체에서는 마을 활동가들이 나서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이들만 두고 직장에 나가는 부모들을 위해 반찬 등을 만들어 나누어주기도 하고, 남의 집 앞에 꽃을 심어서 마을 사람들 기분을 풀어주기도 한다. 마을은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지 않고도 여행을 대신할 활력을 얻도록 해준다. 해방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송두리째 붕괴한 대가족과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코로나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역병이 역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