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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인생을 후회하지도 망치지도 않기 위해 중심 잡기

등록 2021-03-31 10:33수정 2022-06-26 21:24

남들이 다 가는 장에 어떻게든 뒤쫓아가야할까. 나는 소박하더라도 나만의 길을 가야만 할까. 남들을 쫓으려다가 번아웃에 시달리고, 그렇다고 쫓아가지않자니 더욱 불안한 현대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더구나 팬데믹으로 답답함이 가중된다.

그러니 도심을 탈출해 고즈녁한 산사에서 열린 스님과 차 한잔 마시고 싶은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코로나블루로 정신적으로 힘든 여정을 보내고 있거나, 사업 실패나 실직,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라면 말 할 나위가 없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산사를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주는 그 ‘중심’에 법인 스님이 있다. 법인 스님이 <중심>(김영사 펴냄)이란 책을 냈다. 마치 고즈녁한 산사의 다실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중심>은 ‘인생을 망치지않는 법’ 으로 시작한다. 이 장에선 11남매 사이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다 상경해 중국음식점 배달원을 거쳐 금세공을 배워 소도시에 금은방을 차린 ‘신용당’ 주인이 사는 법이다. 신용당 주인은 먹고살만큼 돈을 벌었다고 자만하거나 허황된 욕심을 부리지도, 주색잡기에 눈을 돌리지도 않고, 독서와 등산으로 중심을 잡으며,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삶을 구가하는 동네 아저씨다.

‘중심’은 중심을 향해 치열하게 승부를 걸거나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에서도 자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보람이 아빠는 책보다는 술을 좋아하고, 풍물강사인 보람이 엄마는 낙천적이고 작은 일에도 잘 감동한다. 그런 부모와 대학교 2년생 남동생이 있는 대학교 3년생 보람이네는 지방소읍에 살면서 두륜산과 땅끝 해남 바다를 오가며 오감을 마음껏 누리며 분수껏 나답게 산다. 법인 스님은 보람이네 가족의 삶이 바로 <장자>의 양생주에 나오는 모습이라고 본다.

‘꿩은 열 걸음에 한입 쪼아 먹고,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지만, 새장 속에 갇혀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있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이지 말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이런 장자의 구절이 보람이네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들판에서 어른들이 일하다 새참 때가 되면 바위 위에 올라가 목청껏 노래를 불러 피로를 씻어주는 초등학교 4학년 영홍이까지 <중심>에 소개된 법인 스님의 벗들은 승속과 성별, 나이, 직업을 넘어서 있다.

법인 스님은 조계종 교육원에서 승려들 교육을 책임진 교육부장을 한 박사 학승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실천가이지만, 그 글이 정겨운 것은 지적 유희나 이즘이 아니라 그가 사하촌 사람들과 여민동락하며 웃고 울며 땀흘린 사람냄새가 가득 배어있기 때문이다.

법인 스님은 차의 성지로 불린 전남 해남 두륜산 일지암에 머물 때도 사하촌의 마을 사람들이 하는 감자 캐기, 배추 저리기 같은 울력에 몇날 며칠씩 함께 하며 비지땀을 흘렸다. 2019년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 실상사로 옮겨서도 실상사와 농장에서 사부대중들과 종종 울력을 함께 한다.

‘농사일을 진득하게 하다보면 만물이 수고와 은덕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이치를 깨닫는다. 바로 실사구시의 배움터이다. 지치고, 힘들고, 지루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몸을 밀어올려보라.우리가 얼마나 공허한 회색 논리와 관념에 묶여 살아가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법인 스님도 절집안에서 누구보다 많은 공부를 했고, 선방에도 다녔지만, 대중들의 희노애락애오욕과 함께 하면서 비지땀을 흘리는 것에서 마음공부의 진미를 느꼈음을 짐작케 하는 글이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도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나오는 한마디가 답답한 대중들에게 숨길을 열어준다. 일지암에서 법인 스님과 6개월을 함께 산적이 있는 황지우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써다.

“법인 스님이 이끌어가는 대화의 중심에는 차와 책이 있다. 세속과 그 ‘너머’의 사이, 그 가운데 있는 마음, 즉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대화요 그 말들이 서로 오가며 이야기의 줄기세포가 번지고 얽혀 잡다한 꽃들을 피운다. 그는 설법하지 않는다. 그가 대화하는 방식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대목에서 한마디 하는데 그 짧은 한마디가 괴로움으로 꽁꽁 뭉친 마음 한 귀퉁이를 죽비처럼 가격한다. 순간 알 사람은 알아챈다. 그는 그것을 마음의 ‘해체’라 부른다. 그가 유도하는 대화는 발견이며,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법인 스님은 1976년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출가했다. 20대 초반엔 계룡산 신원사에서 경전보다 문학에 심취하여 지내던 중 “스님은 왜 공부하지 않으세요. 공부해서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할 스님이 왜 이리 한가하게 사나요?”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반도를 떠돌며 방황하기도 했다. 1985년엔 어느 문예지에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미련 없이 문학을 접고, 경전 공부와 수행에 들어갔다. 1994년 조계종 개혁 불사에 참여한 이후 실상사의 대학원격인 화엄학림 학장을 지냈다. 2000년 해남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프로그램을 열어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일지암에서 살 때는 청년암자학교에서 청년들의 고민에 날카로운 진단과 따스한 처방을 내려 ‘병 주고 약 주는 스님’으로 불렸다.

<중심>의 말미엔 그가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있으면 당시 전국적으로 꽤 인기를 얻은 참선수련회를 이끌던 15년 전 받은 한 참가자의 편지를 전한다. 편지에서 참가자는 스님의 법문과 강의도 좋았고, 공양간 음식도 맛있었다고 칭찬 한 뒤 따끔한 충고를 전했다. 스님의 지나친 강직함과 무거움, 절제와 긴장으로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다면서, 정제되면서도 여류롭고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게 지도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유연하게 대중들을 포용한 법인 스님의 품은 그런 충고에 열려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생을 망치지 않기위해, 뒤늦게 후회하지않는 삶을 살기위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중심이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변화를 허용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이 말미의 글이 깨닫게 해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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