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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행법에도 이웃 종교에도 열려 있던 ‘선승들의 맏형’

등록 2021-08-29 18:37수정 2021-08-30 09:22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고우 스님 입적
오는 2일 봉암사 전국수좌회장 봉행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간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고우스님. 사진 조현 기자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고우스님. 사진 조현 기자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사였던 고우 스님이 29일 오후 3시30분께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향년 85. 법랍 60.

조계종 수좌(선승)들의 맏형으로 불리는 고우 스님은 선승들의 본산인 봉암사를 조계종 유일의 특별선원으로 자리 잡게 한 주역으로 손꼽힌다. 봉암사와 태백산 각화서 서암을 거쳐 2006년 봉화 금봉암을 창건해 주석해온 고인은 지병이 악화돼 최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수좌회에 의해 봉암사로 옮겨져 열반했다. 수좌회는 고인이 봉암사 선방과 수좌회를 일군 공로를 기려 전국수좌회장으로 장례식을 봉행하기로 했다.

경북 성주 태생인 스님은 군복무 중 폐결핵에 걸려 제대한 뒤 방황하다가 26살에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수도암에서 공부하면서 폐결핵의 병고에서 벗어난 스님은 청암사와 남장사 강원 등에서 당대의 대강사였던 고봉·관응·혼해 스님으로부터 주요 경전을 배워 불교관을 확립했으며, 29살에 향곡 스님이 주석한 묘관음사 길상선원에서 첫 안거를 난 이래 전국 선방을 다니며 참선 납자의 길을 걸었다.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반려견과 함께 한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경북 봉화 금봉암에서 반려견과 함께 한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1968년 경북 문경 김용사에서 수행하던 도반인 법연·정광 스님 등 10여명의 선승들과 함께 봉암사를 일으켜 세우기로 결의하고 봉암사로 들어갔다. 구산선문의 유구한 수선도량이고, 1947년 성철·청담 스님 등이 결사를 한 도량인데도 한국전쟁으로 전통이 끊긴 봉암사를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고인은 봉암사에서 당대의 선지식인 서옹·서암·지유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총무와 주지 소임을 맡아 결사 정신과 선풍을 되살렸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10·27 법난을 자행해 당시 월주 스님 등 총무원 집행부가 계엄군에 연행되어 총무원 기능이 마비되면서, 봉암사 승려들이 총무원을 임시로 운영하게 됐을 때 고인은 탄성 스님과 함께 10·27 법난을 수습하고 종헌을 개정하는 등 개혁 조치를 한 뒤 3개월 만에 다시 봉암사로 돌아갔다.

특히 2005년 조계종단이 참선 수행 지침인 <간화선>을 무여·혜국·의정·설우 스님 등 선승들과 함께 간행할 때 그는 좌장 노릇을 했다. 스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견성과 동시에 성불)를 각별히 주창했다. 고인이 1970년 선방에서 나름의 한 소식을 하고 전국 선방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던 중 경남 남해 용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만나 “스님, ‘돈오점수’(견성 이후 닦아나감)가 맞지 않습니까?”라고 대들자 성철 스님이 훽 하고 돌아 누워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과 <선문정로>를 상세히 독파한 스님은 “그때 돌아누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것이 그대로 법문이었는데, 그걸 몰랐다”고 고백했다.

2008년 중국 항저우 천목산 천길 낭떠러지 사관, 고봉선사의 수행처로 앞서 가고 있는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2008년 중국 항저우 천목산 천길 낭떠러지 사관, 고봉선사의 수행처로 앞서 가고 있는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중국 천목산 사자암에서 고봉선사(가운데)와 중봉선사(왼쪽)의 상 앞에 선 고우 스님. 고우 스님은 번뇌망상을 싹둑 베어버리라는 듯 보검을 들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중국 천목산 사자암에서 고봉선사(가운데)와 중봉선사(왼쪽)의 상 앞에 선 고우 스님. 고우 스님은 번뇌망상을 싹둑 베어버리라는 듯 보검을 들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천목산 사자암 고봉선사와 중봉선사 상 앞에서 함께 한 고우 스님과 필자.
천목산 사자암 고봉선사와 중봉선사 상 앞에서 함께 한 고우 스님과 필자.

고인은 1987년 봉화 각화사 동암에서 정진 중 무심코 <육조단경> 정혜품을 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말 끝에 마음이 환해지는 체험을 한 뒤, 성철 스님의 중도법문에 근거해 ‘불교의 근본이 중도(中道)이고, 선(禪)은 중도를 체험 실천하는 것’이란 불교관을 확립했다.

그는 참선수행을 널리 전하기 위해 도반인 적명 스님과 함께 1987년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았고, 참선 수행자도 경전과 조사어록을 공부해 정견을 갖추어야 한다며 해인사에서 전국 선승들과 함께 ‘제1회 선화자법회’를 주도했다. 그때 종정 성철 스님이 육조단경 지침 법문을 하고, 서암 스님이 육조단경 강의를, 일타 스님이 율장 특강을 했다.

미얀마의 고승 파욱 사야도(왼쪽)과 2박3일 공개토론회를 펼친 후 기념촬영한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미얀마의 고승 파욱 사야도(왼쪽)과 2박3일 공개토론회를 펼친 후 기념촬영한 고우 스님. 사진 조현 기자

고우 스님은 누구보다 가장 열려 있었다. 참선과 간화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다른 수행을 무시하지 않고 열린 태도로 토론에 임한 점에서 남달랐다. 지난 2011년 한국 간화선을 대표해 남방 위파사나의 대표적인 선사인 미얀마의 파욱 스님과 2박3일 동안 공개적인 문답을 했고, 2012년 조계종 자성과쇄신본부가 마련한 ‘무엇이 깨달음인가’를 놓고, 도법 스님이 묻고, 고우 스님이 답하는 장시간 공개 토론회를 하기도 했다.

2008년 중국 선종사찰 순례단을 이끈 고우 스님(앞줄 왼쪽 다섯째). 사진 조현 기자
2008년 중국 선종사찰 순례단을 이끈 고우 스님(앞줄 왼쪽 다섯째). 사진 조현 기자

법랍 15년 이상 된 중진 스님들의 공부모임인 경전연구회에서도 고인을 가장 신뢰하며 따랐고, 재가자들의 참선 수행을 돕는 불교인재원과 조계사 선림원의 증명법사를 하기도 했던 스님의 법문은 선승들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고인은 절에서도 제사와 불공을 하지 않고 오직 법문과 참선을 했으며, 심지어 ‘부처님 오신 날’ 연등도 켜지 않았다. “왜 절에 연등을 달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외형의 등 공양도 좋지만, 마음의 등을 밝히는 게 더 좋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외형적인 출가보다 출가정신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게 승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에 대한 벽도 넘어 절 아래 마을 사람들이 세운 작은 교회가 낡아 새로 짓는다고 하자 선뜻 적잖은 돈을 내놓아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0년 중국 선종사찰 순례 때 고우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와 필자(왼쪽에서 세번째)가 잠시 쉬고있다.
2010년 중국 선종사찰 순례 때 고우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와 필자(왼쪽에서 세번째)가 잠시 쉬고있다.

고인은 80살이 되면서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일체 대중을 만나지 않았으나, 노년에도 빨래를 손수 했을 정도로 검소하게 소욕지족으로 살았다.

그는 통상 고승들이 남기는 임종게 대신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간다’고 하라”고 했다. 그는 “폐결핵으로 죽으려고 절에 왔는데, 불교를 만나 병도 낫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되뇌이곤 했다.

장례식은 5일장으로 치러지며, 다비식은 오는 9월2일 오전 10시30분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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