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추석에 만난 가족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들도 있다

등록 2021-09-17 04:59수정 2021-09-17 08:45

‘노년의 지혜’ 전하는 김효성 수녀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모처럼 가족과 친척을 만나게 된다. 전과는 달리 늙은 모습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한 기억은 예전에 머물러 있어도 현재의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부모형제 간이라도 그 공백을 무시하고 대하면 자칫 마음이 상할 수 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노년의 지혜’를 전해주는 김효성(66) 수녀를 지난 14일 경기도 파주 ‘성심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에서 만났다. 고요하면서도 정갈해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은 예수마음배움터의 관장인 김 수녀는 최근 ‘아름답게 나이 들기 영성’이란 부제를 단 <미소는 나의 소명>(생활성서 펴냄)을 냈다. 은발과 미소가 어우러진 노년의 모습이 책보다 진실해 보인다.

그는 2011~13년 캐나다 몬트리올 통합양성교육원에서 심리재교육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양성교육원에서 남녀 수도자들의 교육을 도운 데 이어, 이곳에서 아름답게 나이 들기 등을 교육하고 있다. 캐나다의 심리교육 박사 자닌 갱동이 1976년 세운 통합양성교육원은 중년기 이후의 사람들이 삶의 경험들을 되돌아보고, 고유한 생명력을 재발견해 내적 질서를 회복해가게 한다.

예수마음배움터엔 예수마음기도, 영신수련 피정, 성경대학, 에니어그램, 생태피정, 영적 돌봄과 개인 상담, 리더십 교육인 퍼실리테이터 워크숍, 생명력 살리기, 분노 다루기, 아름답게 나이 들기, 시니어 하루 피정 등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수마음배움터 제공
예수마음배움터엔 예수마음기도, 영신수련 피정, 성경대학, 에니어그램, 생태피정, 영적 돌봄과 개인 상담, 리더십 교육인 퍼실리테이터 워크숍, 생명력 살리기, 분노 다루기, 아름답게 나이 들기, 시니어 하루 피정 등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수마음배움터 제공

“아무리 형제자매라도 다른 환경에서 지낸 경험과 관점을 존중해줘야 해요. 저도 26살까지는 집에서 살았지만, 수도원에 들어와 산 세월이 41년이에요. 같은 형제라도 다른 환경에서 많이 변할 수밖에 없는데, ‘언니는 왜 그런 병원에 다녀?’ ‘오빠는 왜 그래?’ 하는 식으로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강요하려 들면 형제간에도 불화가 생길 수 있어요.”

명절 때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게 이것만이 아니다. 김 수녀는 독신으로 늙어가거나 자녀가 없는 분에 대해서도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통상 자녀가 없는 노인보다 자녀가 있는 노인들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구조사 결과 행복지수나 삶의 만족도에선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삶에 잘 적응하지요. 그러니 남의 삶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은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직업이나 직책에서 은퇴한 것이지, 인생에서 은퇴한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김 수녀의 조언이다.

“공식적 역할에선 은퇴해도 비공식 역할은 계속돼요. 가족이나 모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중재해주는 역할, 감초처럼 기쁨을 주는 역할, 다른 사람의 고충을 편견 없이 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이런 비공식 역할을 통해 남도 돕고 자신도 기쁨을 얻는 게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지요.”

노년교육 전문가인 김효성 수녀. 조현 기자
노년교육 전문가인 김효성 수녀. 조현 기자

한국 사회는 세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김 수녀는 노인들에 대한 편견을 바꿀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자신도 ‘노인들이 어쩌면 저렇게 이기적일까’라는 편견을 가질 때도 있었지만, 심리재교육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노인들이 대중교통에서 빈 좌석에 빨리 앉으려는 것은 젊었을 때에 비해 몸이 불편하고 기력이 달려서 그런 것”이라며 “또 노인들이 밖에 자주 나가거나 일을 하려 들면, 타박만 할 게 아니라 ‘방에만 박혀 있지 않고 여전히 생명력을 발현하고 있으니 좋다’고 생각을 바꾸면 응원해주게 된다”고 말했다. 나무가 봄에만 생명력을 발하는 게 아니라,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엔 가을대로, 겨울엔 겨울대로 그에 맞춰 생명력을 발하듯이 사람도 청장년기만이 아니라 노년기에 맞게 생명력을 발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처럼 시기마다 자신에게 맞는 생명력을 다 피워내는 게 좋은 삶이라는 것이다.

“노인 자신들도 병이 들고 기력이 떨어지더라도 ‘나는 이제 끝이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순간을 누릴 필요가 있어요. 내 삶에서 지금은 가장 늙었지만, 앞으로 살날 중에선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까요.”

김 수녀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았을 때가 100살이고,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고 나오는 대목에 대해서도 베네딕도회 루페르트 수사는 노년의 새로운 탄생으로 해석했다”며 “오히려 노년기에 정신적으로 성장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늙으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자기 자신과 온전히 함께 머물기’를 통해 자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재발견을 위한 노년기 필수 과제로 ‘생애 돌아보기’를 권한다.

예수마음배움터엔 예수마음기도, 영신수련 피정, 성경대학, 에니어그램, 생태피정, 영적 돌봄과 개인 상담, 리더십 교육인 퍼실리테이터 워크숍, 생명력 살리기, 분노 다루기, 아름답게 나이 들기, 시니어 하루 피정 등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수마음배움터 제공
예수마음배움터엔 예수마음기도, 영신수련 피정, 성경대학, 에니어그램, 생태피정, 영적 돌봄과 개인 상담, 리더십 교육인 퍼실리테이터 워크숍, 생명력 살리기, 분노 다루기, 아름답게 나이 들기, 시니어 하루 피정 등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수마음배움터 제공

“피정(성당, 수도원 등에 머물며 수련하는 것)을 할 때 둘러앉아 ‘생애 돌아보기’를 하며 어린 시절 기분 좋은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면 생동감이 생겨요. ‘그 행복한 기억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깜짝 놀라며 ‘모두 내 안에 있었네요’라고 답해요. 부모에게 맞거나 가족의 죽음 같은 아픈 기억들도 마찬가지로 내 안에 있지요. 한 사람 안엔 박물관 같은 역사가 담겨 있어요. 같은 역사를 두고도 ‘썩어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가네’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자식들 키우며 고생했지만 멋진 삶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그는 “인생의 백미러를 통해 지난날을 바라보는 이 진실한 ‘관상의 시선’이야말로 노년기에 주어진 특권이요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주위에 사랑을 비추며 모두를 평안하게 하는 ‘참된 인격의 통합 시기’가 바로 노년기라는 것이다.

살기 위해 달려가고 쟁취하고 움켜쥐었던 젊은 날들과 달리 노년기엔 받아들임과 비움, 포기 같은 새로운 덕목의 중요성을 깨쳐야 한다는 것도 그의 주요한 메시지다.

“마지막 여행가방을 쌀 때의 자세가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돈을 버는 것, 남과 경쟁하며 자존심도 필요했지만, 빈 몸으로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준비할 때는 불필요한 것들을 여행가방에 힘겹게 채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불필요한 것들은 다 비워내고 마지막까지 지니고 갈 마음 자세를 가다듬어 오직 삶의 목표와 의미만을 간추려 담아야지요. 당신의 가방엔 무엇이 담겨 있나요?”

파주/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톤즈의 빛으로 남은 ‘인간 이태석’의 삶 1.

톤즈의 빛으로 남은 ‘인간 이태석’의 삶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2.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자는 누구인가

왜 같은 불교인데도 어디선 육식 금하고 어디선 허용할까 3.

왜 같은 불교인데도 어디선 육식 금하고 어디선 허용할까

걸림돌도 디딤돌이 된다 4.

걸림돌도 디딤돌이 된다

예수께서 오신 뜻은 ‘파격적 환대’를 위해서다 5.

예수께서 오신 뜻은 ‘파격적 환대’를 위해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