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신부. 조현 기자
어느 할머니가 “우리 애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상담사가 “애가 몇살이냐”고 묻자 “지금 쉰살”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쉰살에 자식까지 있는 아들을 애라고 하면서 걱정하는 어머니는 분리불안의 전형적인 예다. 분리불안은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엄마도 분리불안장애를 갖고 있다. 이런 엄마들은 아이가 늘 아이로 남아있기를 원한다. 자식이 아이로 그냥 머물러 있을 때, 아이가 엄마의 잃어버린 자기애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신부가 최근 펴낸 <말해야 산다>(가디언 펴냄)에 나오는 이야기다. 홍 신부는 “동물실험에서도 수컷은 살기 위해 새끼를 버리는데, 암컷은 새끼를 품에 안고 죽을 정도여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하늘에 계신 어머니’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고, 에덴동산이 바로 어머니의 품이라는 학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놓지 못하면 맘충이 되고 만다”고 경고한다. 어린 나무는 성장하면서 다른 나무들과 거리를 두어야 잘 자라는데, 엄마라는 큰 나무 옆에 있으면 엄마보다 작은 사람밖에 안 되고, 사랑과 집착이 식별이 안 될 때 아이들은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하고 덩치만 큰 덜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홍 신부는 <말해야 산다>에 ‘꼰대 신부 홍성남의 구시렁 심리학’이란 부제를 달아 겸허함을 내보였지만, 이 책엔 사제로서만이 아니라 심리상담가로서 진솔하고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직설이 담겨있다. ‘사이다 신부’라는 별명답게 그는 오래 묵은 체증을 내려가게 할 만큼 시원하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많은 가톨릭 사제 가운데도 독특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9주년 미사에서 상담소 관계자 및 봉사자들과 함께한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제공
그는 가톨릭의 게임 체인저 구실을 하고 있다. 가톨릭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좋게 말하면 경건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울하다.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아랑곳하지 않고, 입 벌려 웃기라도 하면 죄라도 짓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석고상처럼 딱딱해져 마사지로도 풀기 힘든 얼굴 근육도 그의 말과 글 몇 마디로 흐물흐물하게 변한다. 마취도 하지 않고 곪은 화농을 터트리는 현대판 화타가 아닐 수 없다.
홍 신부는 본래부터 이토록 탁월한 심리 처방자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자기 몸과 마음도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소심했고, 우울했고,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홍 신부의 말이 더욱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동병상련의 아픔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고, 우울하고, 힘든 분들이 이토록 많은 시대에 사이다 신부는 우울한 시대의 숨구멍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일반적인 성직자들의 가르침과는 상반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교회에서 신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불평하지 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성직자들은 하느님께 받은 게 얼마나 많은데 불평이냐고 야단치기도 한다. 홍 신부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불평 중독자가 돼서 짜증이나 내고 사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감사를 권한다”면서도 “그러나 무작정 불평을 질책하거나 죄악시하는 것은 사람 마음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말한다. 불평을 못 하게 하면 억압이 돼서 신경증적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하는 불평을 유익한 것, 해로운 것, 기분풀이용 등 세가지로 본다.
“첫째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기분 풀이용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불평, 즉 험담은 너무 자주 하면 중독이 되지만 어느 정도는 속풀이 심리 치료 효과가 있기에 가끔 사용한 것은 유용하다. 둘째는 유익한 불평이다. 이런 불평은 논리적 근거가 있기에 듣는 사람들이 경청한다면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조직 내 아무런 불평이 없다면 그것은 그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조짐이다. 셋째 해로운 불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평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불평이다. 이런 불평은 본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불평은 바로 이런 해로운 불평을 말한다. ”
그는 “살면서 불평한다는 것은 아직은 힘이 있다는 증거이니 나쁘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면서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는 것처럼 불평도 약에 쓸 때가 있으니 잘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홍 신부는 마음치유자다. 그는 “많은 사람이 몸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마음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지하며 몸이 약한데 비하여 마음은 튼튼하다고 여긴다”며 “몸은 다치면 아프지만, 마음을 별로 통증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듯하지만 사실 마음은 몸보다 훨씬 약하다”며 적극적인 마음치유를 권한다.
“몸의 상처는 약을 발라 주고 치료해주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회복된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상담 내용의 대부분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최근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생긴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오빠에게만 주어서 서운했던 기억, 선생님으로부터 억울한 야단을 맞았던 기억, 이해받지 못해서 섭섭하고 외로웠던 기억 등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유령처럼 마음 안에서 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아주 약하고 여린 탓에 쉽게 상처를 입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린 아이 살 혹은 순두부 같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그는 “이렇게 여린 마음에 한번 입은 상처를 몸처럼 자연스럽게 아물지 않고, 치유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를 흘린다”며 “상처를 돌보지않으면 상처 입은 자아는 안으로 숨어들고 상처 입은 그 시간에 멈춘 채로 발달조차 멈춰버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내면의 상처로 부드럽게 다스리면 아문다”며 “칭찬, 존중, 이해가 상처치유약”이라고 권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