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3>에 출연해 매력적인 목소리로 화제를 모으는 소리꾼 고영열이 지난 15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그는 케이(K)팝을 넘어 케이국악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방탄소년단 슈가가 ‘대취타’라는 국악곡으로 세계인의 귀를 강타한 사이, 안방에서는 <제이티비시>(JTBC)의 <팬텀싱어3>에 출연한 소리꾼 고영열(27)이 ‘모방 불가’의 목소리로 파문을 일으켰다.
고영열은 지난 4월 프로듀서 오디션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내보였다. 그간 소리꾼이 끼어들 틈이 없던 <팬텀싱어>에서 ‘춘향가’ 한 대목을 부른 것이 시선을 끌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그가 피아노를 치며 재즈풍으로 ‘이히이히이이 내 사랑이로구나~’를 내지르자마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가수 윤상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김이나 작사가는 “단소 같고, 바람 소리 많이 들어간 대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 같고, 존재감은 정말 팬텀싱어 통틀어서 현재까지 가장 독보적인 분이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손혜수 성악가는 “저도 성악가 말고 ‘소리꾼’을 하고 싶다”라고 할 정도였다. 성악 팬들이 주류인 <팬텀싱어3> 시청자들 가운데도 “내 생전에 국악을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이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지난 15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고영열은 <팬텀싱어3>를 시작한 6개월 전에 견줘 홀쭉해졌다. 반년간 하루 12시간씩 노래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연의 고단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4인조 결승팀이었던 ‘라비던스’가 ‘라포엠’에 밀려 2위에 그친 애석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연에서 팀원 짝짓기를 할 때 길병민의 거절에도,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해맑게 새로운 짝을 찾아 사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라이벌 미션에서 가장 주목받던 예일대 음악대학원생 존노를 ‘라이벌’로 꼽은 ‘짝짓기’야말로 고영열스러웠다. 이 미션에서 고영열은 쿠바 노래 ‘투 에레스 라 무시카 케 텡고 케 칸타르’(Tu eres la musica que tengo que cantar)를 불러 원곡자 파블로 밀라네스보다 더 쿠바적 한을 토해냈다. 그런데 이 미션에서 더욱 돋보인 것은 고영열의 프로듀싱 능력이었다. 존노는 고영열과는 극적인 대조를 보이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쿠바의 흥을 폭발시켰다. 고영열은 이 경연에서 최고점을 받은 존노에게 2점 차로 석패했으나 그의 프로듀싱 능력만큼은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소리꾼의 여행이 쿠바로만 끝났다면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의 지구 반대편 여행은 그리스의 ‘티 파토스’(Ti pathos), 스페인의 ‘테 키에로 테 키에로’(Te Quiero, Te Quiero)로 이어졌다. 결승전에선 시청자 투표가 75%나 반영돼 대중적인 노래가 어필하기 쉬웠다. 그럼에도 라비던스는 결승전에서조차, 생소하기 그지없는 이스라엘의 ‘밀림 야포트 메엘레’(Millim Yaffot Me’Eleh)를 선곡했다. ‘미완의 개척’은 포기되지 않았다. 그런 도전 중에서도 고영열을 무엇보다 감격하게 한 것은 국악곡을 결승 경연곡의 하나로 올린 것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패션업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장르를 넘어선 곱하기가 계속되고 있어서 평소 크로스오버를 지향해왔지만, 공연장에 가보면 친구들은 국악에 대해 전혀 몰랐다.”
<팬텀싱어> 출연 당시 모습. 프로그램 갈무리
광주광역시 국창 임방울의 이름을 딴 임방울대로에서 태어난 고영열이 <팬텀싱어3> 경연에 나오게 된 것도 국악을 좀 더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성악 위주의 이 프로그램에서는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참가자들이 국악인과 콜라보(컬래버레이션)는 처음 해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기도 해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원픽은 고영열’이라던 존노와 김바울, 황건하 등 라비던스 멤버들이 앞장서서 국악곡을 선곡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악은 감정이 100%’라는 고영열의 말대로 뼛속 감정까지 끌어올려 ‘흥타령’을 해냈으니, 그로선 한을 푼 셈이다.
‘목소리는 베이스, 음역은 테너, 직업은 소리꾼’인 고영열은 활화산 같은 고음으로 천장을 뚫곤 했다. 그런 고음을 뽑아내고 나면 대부분의 경연자가 노래가 끝난 뒤에도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러나 고영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숨이 골랐다. 마치 ‘눈밭을 걸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를 엿보는 듯했다.
수영선수였던 그는 13살 때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판소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작사·작곡을 하는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바이엘을 잠깐 배운 것 외에는 제대로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고, 유튜브 등을 보고 스스로 터득했다고 한다. 열심히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도 ‘체르니’에서 멈춰선 사람들에겐 얄미울 법한 그의 재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 거문고, 가야금, 트럼펫, 해금, 미디 등 그가 다루는 악기는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남들은 인생을 걸고 덤벼드는 장르들을 나비처럼 가볍게 튀어 오르며 컬래버레이션을 해내는 그가 ‘라비던스’(미친 안내자)라는 말 그대로 다음엔 어디로 튀어 또다시 ‘미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현 선임기자,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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