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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신부의 수어 미사, 미국인 영적 샘터가 되다

등록 2021-04-02 04:59수정 2021-04-02 07:09

[인터뷰] 미 워싱턴대교구 박민서 신부
가톨릭 미국 워싱턴대교구에서 미국 수어로 미사를 집전 중인 청각·언어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제공
가톨릭 미국 워싱턴대교구에서 미국 수어로 미사를 집전 중인 청각·언어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제공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힘든 상황일수록 장애인들은 더 고통받기 마련이다. 한국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미국에서 한 한국인 가톨릭 사제가 위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청각·언어장애인 사제 박민서(53) 신부다.

박 신부는 지난 1월 서울대교구에서 미국 워싱턴대교구로 발령받은 이후 ‘워싱턴대교구 농아인 사목 전담 사제’ 및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농아인 본당 담당 사제’로 일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신자 사목을 할 수 있는 사제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워싱턴대교구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미국행이었다. 박 신부는 지난 2월부터 매주 워싱턴대교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어로 미사를 집전한다. 이전까지 이 미사에 보통 청각장애인 신자 95명가량이 접속했으나, 박 신부 등장 이후 접속자가 10배가량 불어나 워싱턴대교구 관계자들도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신자들의 호응에 미국 가톨릭 언론사 <가톨릭 스탠더드>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등은 “청각장애를 장애가 아닌 문화로 이해하고, 청각장애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이해하는 사제가 부임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4일 부활절을 앞두고 박 신부와 모바일 메신저로 인터뷰를 했다.

미국 수어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 중인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유튜브 갈무리
미국 수어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 중인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유튜브 갈무리

“미국 수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청각장애인 사제의 수어 미사를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고들 하더군요.” 수어는 한국과 미국이 많이 다르다. 미국 수어는 같은 영어권인 영국 수어와도 완전히 다르다. 박 신부는 1994~2004년 청각장애인을 위한 워싱턴의 종합대학인 갤러뎃대에 유학하며 미국 수어를 익혔다.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소통이 중요하고, 그래서 모국어 수어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쁨, 어려움, 슬픔, 힘듦을 겪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서 기쁨, 어려움, 슬픔, 힘듦을 겪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을 사람 목소리로 하셨고, 사람들의 외침을 사람의 귀로 들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청각장애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같은 장애인의 손짓과 몸짓으로 전합니다. 수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제는 청각장애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사제의 미사가 청각장애인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영적인 샘터가 됐다고 합니다.”

가톨릭 미국 워싱턴대교구에서 미국 수어로 미사를 집전 중인 청각·언어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제공
가톨릭 미국 워싱턴대교구에서 미국 수어로 미사를 집전 중인 청각·언어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제공

가족과 교우들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는 “13년간 함께해온 한국 청각장애 교우들을 위해서도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며 “어떤 순간에도 기쁨과 감사와 긍정의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사제가 됐지만, 어린 시절 그는 급우들의 놀림과 왕따로 고통을 받았다. 10년 전 사제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경보음을 못 듣는 바람에 홀로 피신하지 못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시각·청각·언어 3중 장애를 지닌 키릴 악셀로드 신부를 만나면서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미국에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농인성당 신자들 중에도 시청각장애인이 있는데, 주일 미사를 참례할 때 촉수어통역사가 두 손으로 시청각장애인의 두 손을 만지면서 사제와 신자들의 말을 전해줍니다. 촉수어통역사들이 병원, 관공서, 상점에 데려가 통역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년 3월 코로나19 사태로 자가격리가 강화되면서 촉수어통역사들을 만날 수 없게 됐어요. 농인은 듣거나 말을 못 해도 좋은 자연을 두 눈으로 보면서 산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인들은 사람들로부터 완전 격리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어요.”

미국 수어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 중인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유튜브 갈무리
미국 수어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 중인 박민서 신부. 가톨릭 워싱턴대교구 유튜브 갈무리

시청각장애인들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나은 처지에 있는지 상기시키며 오히려 더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박 신부의 모습이 자족보다 불만을 토로하기 쉬운 일반인들을 일깨워준다.

박 신부는 “격리 기간에도 시청각장애인들과 점자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들 부탁을 받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서 시청각장애인 집 문 앞에 놓고 간 봉사자들이 있었다”며 기뻐했다.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다운 관점과 처방을 내놓았다.

“저는 미국인들이 아시아계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봤어요. ‘우리가 함께 있으니 힘을 내라’고요. 예수님은 자신을 박해하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까지 사랑하고, 서로 분열하지 않고 하나 되게 해주길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했지요. 증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증오를 없앨 수 있는 무기와 힘은 참된 사랑과 완전한 용서뿐입니다. 반목과 분열을 화해와 일치로 바꾸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입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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