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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한 지붕 세 종교…‘통곡의 벽’에 울려 퍼진 원혼들의 메아리

등록 2022-12-12 11:49수정 2022-12-12 12:18

이스라엘을 가다(하)
한국·이스라엘 수교 60년 맞아
‘역사적 인물’ 예수 유적지 찾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루살렘 통곡의 벽. 조현 종교전문기자

‘religion’(종교)은 라틴어 어원상 ‘다시 묶다’, ‘다시 연결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들의 열망이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아 고통을 가중시킨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어디나 유대인과 무슬림과 크리스천 간의 불화로 인한 아픔의 역사가 배어있다. 더구나 그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2000년 전 로마 지배 당시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이후 아랍인들이 정착해 살던 땅에 1948년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과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다.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에 있는 라헬의 무덤. 팔레스타인 구역 내에 있는 유대인 성지를 차지한 이스라엘이 라헬의 무덤 둘레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의 탄생지로 알려진 베들레헴에 있는 라헬의 무덤. 팔레스타인 구역 내에 있는 유대인 성지를 차지한 이스라엘이 라헬의 무덤 둘레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베들레헴의 라헬의 무덤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대인 랍비와 랍비 훈련생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베들레헴의 라헬의 무덤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대인 랍비와 랍비 훈련생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베들레헴이나 나사렛 예루살렘 성벽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주요 기독교 성지 대부분이 무슬림인 아랍인들이 사는 곳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방문한 이스라엘 기독교 성지 여러 곳에서 총을 들고 아랍인들을 감시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순례단의 첫 방문지였던 베들레헴에서는 라헬의 무덤을 둘러싼 거대한 분단 장벽이 한반도 비무장지대 철책보다 높게 서 있었다. 라헬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로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인물이다. 라헬의 무덤은 고대부터 헤브론과 예루살렘의 길목에 위치해 순례자들의 기도처이자 쉼터였다. 특히 유대인은 물론 아랍인들에게도 임신이나 출산을 위한 기도처로 유명했다. 라헬의 무덤은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 경계에서 팔레스타인 지역 안쪽에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성지를 차지하고 주위에 높은 방호벽을 쌓았다.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인 채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라헬의 무덤 안에 들어가니 수많은 유대교 랍비들과 랍비 훈련생들이 토라와 탈무드를 외우고 있었다. 그들은 경건하게 경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m 떨어지지 않은 장벽 너머에서 이 땅을 빼앗기고 원통해 할 무슬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들어가자 이스라엘이 만든 거대한 장벽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 어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특히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요단강 서안에서 머리에 이스라엘군 총탄을 맞고 사망한 <알자지라> 소속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을 호박귀신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 도시를 둘러 가로막은 거대한 분리장벽에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요라단강 서안에서 머리에 이스라엘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lt;알자지라&gt; 소속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대형 초상화를 그려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 도시를 둘러 가로막은 거대한 분리장벽에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요라단강 서안에서 머리에 이스라엘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알자지라> 소속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대형 초상화를 그려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해 쳐놓은 분리장벽의 팔레스타인 쪽 벽에 무슬림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호박귀신으로 그려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해 쳐놓은 분리장벽의 팔레스타인 쪽 벽에 무슬림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호박귀신으로 그려놓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도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는 아랍인 도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예수의 고향을 복음화하기 위한 서구의 선교사역이 집중되어 학교와 병원, 다양한 복지기관에 세워졌고, 유능한 학생들을 선발해 유럽에 데려가 유학을 시켰다. 이강근 유대학연구소장은 “1960년대엔 마을의 70%까지 기독교인이 늘었으나 부유한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하이파 등 대도시로 떠나 지금은 35% 남짓만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세가 약화돼 기독교인들과 아랍 무슬림들 간의 충돌이 잦다”고 설명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성전산의 황금돔. 조현 종교전문기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성전산의 황금돔.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루살렘은 종교 갈등의 핵이다. 특히 예루살렘 순례객들에게 등대 구실을 하는 황금돔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 종교가 모두 성지로 삼는 곳이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거처로 지은 성전은 유대인들에겐 꿈에도 잊지 못하는 성소다. 황금돔이 있는 성전산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다윗의 무덤이 있는 성전산을 유대인들은 시온산이라고 하여 유대 시온주의의 구심체로 삼았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해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중심인 마가의 다락방이 그곳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638년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무슬림들은 이곳을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고 믿어 성전 터에 무슬림사원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세상이 창조될 때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그곳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 있다. 이스라엘 내에선 유대인들이 치안의 전권을 쥐고 있지만, 전세계 아랍권의 반격이 두려워 이 이슬람 성지만은 어쩌지 못하고 있다.

세 종교 모두의 성지가 자리해 늘 갈등이 잠복한 예루살렘 성곽을 드나드는 사람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세 종교 모두의 성지가 자리해 늘 갈등이 잠복한 예루살렘 성곽을 드나드는 사람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순례객이 예루살렘 성곽 부근을 순례하는 날은 때마침 금요일로 이슬람의 안식일이었다. 수많은 무슬림들이 줄지어 성전산을 오르고 있었다. 성전산 입구엔 이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가득했다. 아랍인들이 사는 곳마다 이슬람 사원이 있지만, 안식일이 되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아 예루살렘의 무슬림들은 성전산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무슬림들이 모일 때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45살 이하의 출입을 막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항의가 빗발쳐 험악한 분위기가 되곤 한다. 이처럼 세 종교가 한 지붕을 성지로 삼으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의 혈전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됐고, 지금도 언제든 일촉즉발의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이 바로 성전산이다.

예루살렘에서 순례단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실로암 연못이었다. 순례객을 맞은 유발 바루흐 예루살렘 고고학연구소장은 “2004년 예루살렘시가 하수도 파이프 공사를 하던 중 큰 돌덩이를 발견해 공사를 중단한 뒤 실로암 연못을 발굴했고, 이곳에서 성전산으로 연결되는 2개의 계단길로 발굴했다”고 밝혔다. 예루살렘의 발원지인 기흔샘의 물이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 흘러들어 고이는 이 실로암 연못에서 유대인들은 몸을 정결하게 씻은 뒤 성전산을 올랐다고 전해진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실로암 연못은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 맹인의 눈에 바른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고 한 기적의 성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성곽 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 순례길에서 총을 들고 감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예루살렘 성곽 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 순례길에서 총을 들고 감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 조현 종교전문기자

실로암 연못은 통곡의 벽과 연결된다. 예루살렘 성전산을 둘러싼 450m의 서쪽 벽인 통곡의 벽에 가니, 수많은 유대인들이 벽에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로마시대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유대인들은 이곳을 2000년 동안 잊은 적이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2000년간 나라를 잃은 민족이 어떻게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자손 대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기어코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소다.

이강근 유대학연구소장은 나라가 망해도 유대 정신만은 유지시켰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서기 68년 로마 대장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해 함락 직전에 성을 뼈져 나온 요하난 벤 자카이는 ‘베스파시아누스가 훗날 로마 황제가 될 것’이란 예언을 해 베스파시아누스의 환심을 산 뒤 ‘황제가 되면 랍비 학교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망했지만 유대교의 랍비 교육은 유지하게 했는데, 나라는 비록 망해서 없어져도 교육을 통해 유대교 전통이 전승되기만 하면 유대 민족은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가 점령한 이후부터 정해진 단 하루만 방문이 허용되자 그날이면 이곳에 찾아 한이 맺힌 통곡을 터트리면서 ‘통곡의 벽’으로 불리게 됐다. 자세히 보니, 통곡의 벽 좁은 틈새엔 작은 종이들이 꽂혀 있었다. 이강근 소장은 “1년 중 정해진 날 하루만 방문하면서 날이 어두워져 떠나야 할 때쯤 유대인들은 내년을 기약하자며 기도를 적은 작은 쪽지를 슬쩍 벽 틈에 넣곤 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영란 전문 가이드는 “이곳은 기독교 순례객들도 반드시 찾는 장소”라며 “2000년 동안 잊지 않은 그 기도의 정신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랍비를 비롯한 유대인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랍비를 비롯한 유대인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통곡의 벽에 기대어 열심히 토라를 외는 랍비도, 예수무덤교회에 머리를 숙인 크리스천도, 성전산 이슬람 사원을 향해 오르던 무슬림도 그토록 신심이 깊은데, 왜 이들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종교가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불화를 심화하고 갈등과 폭력을 야기한다면,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대한 통곡의 벽엔 수천년간 다른 종교에 의해 죽어간 수많은 영혼이 토하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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