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4일 그동안 인권침해와 강압조사 의혹과 논란이 무성했던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온 국정원이 갑자기 이곳을 공개한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간첩혐의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합신센터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빈번히 이뤄진다는 상당수 탈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특히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폭언·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받고 오빠에 대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폭로한 데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과연 국정원의 의도가 제대로 관철됐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우선 합신센터에 독방, 독서실, 운동실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곧바로 인권침해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하드웨어’가 곧바로 좋은 ‘소프트웨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은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시설 자체에 대한 국정원의 설명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정원 쪽은 탈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폐회로텔레비전의 설치 장소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했고, 녹화 문제를 놓고도 “모니터 용도일 뿐 녹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탈북자로부터 구두 동의를 받은 뒤 녹화를 한다” “녹화는 가능하지만 녹음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계속 말을 바꾸었다.
합신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탈북자들이 ‘조사관’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선생님이 정말 잘해 주신다” “아버지 같다” “폭행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등의 말을 이구동성으로 한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마치 ‘수령님 덕분에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북한 텔레비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미 많은 탈북자들이 “나이 어린 직원으로부터 반말은 예사였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무조건 ‘선생님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야 했다”고 토로한 것에 비춰 보면 탈북자들의 이런 모습 자체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국정원은 “지난해 가을부터는 탈북자들이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조처했고 달력도 비치했다”고 자랑했으나, 이런 설명은 오히려 “6개월 동안 달력도 없이 감금생활을 했다”는 유가려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뿐이었다.
이번 합신센터 공개는 국정원이 아직도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하면 궁지를 모면할까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국정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식 홍보가 아니다. 합신센터 조사에서부터 증거 조작에 이르기까지 유우성씨 사건에서 저지른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관련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조사 대상 탈북자에 대한 변호사 접견권 보장 등 제도적 개선책을 서둘러야 한다. 국정원은 도대체 언제까지 ‘꼼수’만 부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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