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뒤 여기저기서 그와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가 비슷하다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일개 대기업 부사장과 ‘국가 지존’을 동렬에 놓고 비교하는 것부터가 큰 불경죄에 해당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실제로 유사점이 없지 않아 보였다.
첫째, 비행기(국가)를 ‘내 것’으로 여기며 구성원들이 자신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엿보인다. 둘째, 아랫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격적 모욕까지 주며 다짜고짜 내리게 한다. 셋째, 쫓아낸 사람한테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강요한다.(“국무위원의 발언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넷째, 과거로의 후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섯째, 국제적 망신 사태로 국가 이미지가 훼손됐다. 여섯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아버지의 후광’이 어른거린다 등등….
그리고 또 있다. 큰 권력이든 작은 권력이든, 그 앞에만 서면 사람들이 움츠러드는 것은 왜 또 그리 닮았는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는 직언을 하는 부하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아니, 그런 말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직된 구조가 너무나 똑같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조 전 부사장은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뒤늦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아직도 상황 파악 자체가 안 된 것 같다. ‘무늬만 사과’라도 좋으니 유감 표명이라도 한번 하면 좋으련만 영 소식이 없다. 침통한 표정을 지어도 시원찮을 형편에 ‘진돗개 실세’ 따위의 썰렁한 농담을 해서 국민의 울화통을 더욱 자극했다.
검찰 수사도 천양지차다. 땅콩 회항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가 진척되면서 감추어두었던 사건의 전모가 얼추 드러나고 있으나, 비선 세력 국정개입의 실체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조짐이다.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전광석화처럼 압수수색을 한 검찰이지만 정윤회씨 등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한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는데 권력 안에서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고, 자리를 물러나는 사람도 없다.
관심은 ‘대한항공’의 앞날과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태로 크게 혼쭐이 났으니 뭔가 달라져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조씨 일가가 깊이 반성하고 정신을 차린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책임진 지금의 권력은 심기일전의 자세도, 총체적 쇄신 의지도 보이지 않은 채 문고리 권력 변호에만 급급하다.
박근혜 정권의 앞날이 궁금해 과거 권력 핵심에 몸담았던 이 분야의 ‘선수급’들한테 전망을 물어보았다. 의견은 대동소이했다. ‘이 정권은 그동안에도 별다른 업적을 내놓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예상외로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고 콘텐츠도 부실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치명적인 사건이 터지고 뒷수습까지 엉망이니 급속도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심지어 ‘이제 끝났다’고 단언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이 부처의 국장과 과장 인사까지 간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무원 사회의 냉소와 이반 현상이 심각해진 것도 공통된 우려 사항이었다.
사실 비선 세력이 발호하기 좋은 토양을 앞장서 제공한 사람은 바로 박 대통령이다. 평소의 이상한 근무 습관부터가 그렇다. 세월호 사건 때도 드러났지만 박 대통령은 ‘대면 보고’를 꺼리는 것은 물론 ‘정시 출근’의 개념마저 없어 보인다. 대통령과의 접근 통로가 제한될수록 문고리 권력의 크기가 극대화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깃발에 적힌 언어들도 빛을 잃었다. 권력 주변의 비정상적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따위의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국가 개조’보다 더 절실한 과제가 ‘청와대 개조’와 ‘대통령 개조’임도 모두 알게 됐다. 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고 목소리의 데시벨을 높인다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럴수록 공허한 울림만 커질 뿐이다. ‘권력의 희화화’만큼 정권에 치명적인 것도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을 희화화하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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