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8일부터 진행 중인 ‘반려동물 관리방안 국민의견 조사’ 설문이 반려동물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반복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설문 문항이 편향적입니다. 반려인만 교육하면 된다는 편견을 확대하는 설문에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펫숍, 개농장, 시골개 등 본질을 해결해주세요. 단지 개물림 사고로 보유세를 말하는 게 속상하네요.”
정부가 반려동물 보유세, 개물림 사고 등 반려동물 중요 정책 사안을 국민에게 설문하며 단편적인 찬반을 물어 오해와 갈등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 의견을 묻는 질문은 결국 설문조사 하루 만에 항목에서 제외됐다.
국민권익위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8일 열흘간
‘반려동물 관리방안 국민의견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조사의 목적을 “반려가구가 증가하면서 학대, 개물림 사고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국민 인식과 갈등 정도를 파악하고, 제도 개선 사항을 발굴하기 위해 실시한다”고 밝혔다. 설문 항목은 반려동물 입양 전 소유자 교육의무화, 반려동물 보유세 신설, 개 물림 사고견의 안락사 여부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8일부터 국민권익위가 운영 중인 ‘국민생각함’에 반려동물 보유세 신설, 개물림 사고견 안락사 등의 의견을 묻는 설문을 진행 중이다. 누리집 갈무리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8일부터 국민권익위가 운영 중인 ‘국민생각함’에 반려동물 보유세 신설, 개물림 사고견 안락사 등의 의견을 묻는 설문을 진행 중이다. 누리집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항목은 총 6개로 단출했지만 질문에는 그간 첨예한 갈등을 겪어온 사안들이 포함됐다. 특히 개물림 사고견의 안락사 찬반 의사를 묻는 항목은 개물림 사고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잘못된 예방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의 설문은 해당 항목에서 ‘귀하께서는 사람을 공격한 동물을 안락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고 있다.
동물 전문가들은 이러한 설문 자체가 동물 관련사고의 다양한 원인을 간과하고 동물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은 “동물에 의한 사고는 동물의 공격성이 발현되어 발생하기도 하지만, 보호 본능이나 스트레스, 잘못된 양육방식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난다. 그만큼 사고에 대한 예방과 사후 대처도 달라야 한다. 그러나 해당 설문은 동물의 교정 가능성을 부정하고, 모든 책임과 원인이 동물에게만 있다고 생각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불특정 다수의 동물을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존재로 인식시키는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덧붙였다.
사고견의 징벌적 살처분이 추후 사고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은 공통적이었다. 카라 신주운 정책기획팀장은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과 교육이다. 개물림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사고견을 어떻게 할지만 논의해서는 다음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질문함으로써 지금껏 반복되어 온 갈등을 심화시키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사람 문 ‘그 개’ 안락사 시킨다고 개 물림 사고 예방되나)
지난달 11일 울산 울주군 한 아파트에서는 개가 8살 어린이를 공격해 ‘안락사 논쟁’을 일으켰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이순영 올어바웃애니멀트레이닝(AAAT) 대표는 “최근 울산에서 어린이가 개로부터 공격당한 사고로 인해 개물림 사고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사고견에 대한 분노와 재발 가능성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사고견의 안락사를 묻는 것은 공격적인 개는 안락사 해야 한다는 명분 만들기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이 제도 개선에 실익이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올해 4월 동물보호법이 전면개정되며 이미 ‘기질평가제’를 2024년부터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질평가제는 법이 정한 맹견이 아니더라도 개가 사람 또는 다른 동물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개의 소유주에게 동물에 대한 기질평가를 받도록 해 맹견으로 지정하거나 교육·훈련 혹은 안락사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국성서대 김성호 교수는 반려동물과 관련한 중요 정책을 이런 식의 가벼운 ‘인기 투표’로 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교수는 “설문조사는 용어 선택부터 질문 순서까지 면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기존 정책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이 찬반을 묻는 것은 위험한 조사 결과를 내놓을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가벼운 설문에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정부의 조사 결과가 수차례 인용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3000여 명이 참가한 ‘반려동물 관리방안 국민의견 조사’ 댓글란에 시민들이 의견을 남기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일 오전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에 관한 찬반을 묻는 설문은 6개의 항목 중 제외됐다.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정책과 김세진 과장은 “이번 설문조사가 반려동물 보유세 추진을 공론화 하는 것처럼 오해되는 지점이 있어서 질문을 삭제했다. 이번 조사는 해당 사안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의식 수준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당장 정책에 반영하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편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날 오전 농림축산식품부에 개물림 사고와 관련한 항목 또한 수정하거나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설문에 참가한 국민은 3800여 명으로, 총 330건의 댓글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