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원장이 노령견 진료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비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이다. 여든 가까이 된 인상 좋은 할머니께서 덩치 큰 시추를 안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멀리서 찾아왔다고 하셨다.
“선생님, 우리 토비를 고쳐주세요.”
할머니 품에 안긴 13살 시추 ‘토비’의 한쪽 눈은 언뜻 보아도 심각했다. 안압이 높고 눈이 상당히 돌출된 상태여서 통증이 심할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안약만 열심히 넣어주셨다는 할머니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통증만 있는 눈을 달고 있는 건 할머니가 어떻게든 토비의 눈을 떼어내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많은 보호자는 눈을 떼어낸다는 얘기를 들으면 충격이 크다. 할머니이시니 더욱 그런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다른 병원에서도 이미 들으셨겠지만… 토비는 눈이 아주 아파서 약물로는 치료가 어려워요. 여기에서도 당연히 고칠 수가 없어요.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픈 눈을 떼어내는 수술이에요. 놀라실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토비가 계속 이렇게 지내면 더 욱신거리고 아플 거예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의 우려와 달리 할머니는 ‘쿨하게’ 동의하셨다. 토비가 아프지만 않게 된다면 수술하겠다고 하셨고, 안구적출 수술을 마친 토비는 더는 힘들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토비 할머니는 거의 매주 꼬박꼬박 먼 길을 오셨다. 내원하는 이유는 사소한 증상이었다. 귓병이 잘 낫지 않는다거나 발을 너무 많이 핥는다거나 하는 간단한 이유로 버스를 갈아타고 뚱뚱한 시추를 안고 데려오셨다. 나는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데 가면 우리 애들 나이 들었다고 대충 봐준다”는 것. “아이고, 세상에나 그럴 리가요.” 할머니는 뭔가 단단히 삐치셨던 게다.
할머니에겐 토비 말고도 ‘토미’라는 시추가 또 있었다. 토비와 토미는 둘 다 유기견이었다고 한다. 둘 다 12살, 13살 정도가 되니 여기저기 ‘고장’이 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도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힘들어서 아는데, 우리 불쌍한 토비와 토미는 얼마나 불편하겠냐’며 말을 꺼내셨다. 뭐가 안 좋으면 고쳐주고 싶은데, 그냥 나이가 들어서라고 하니 속상한 것이다. 병원 가면 약만 준다고, 안약을 넣어줬는데도 낫지 않는데 일찍 수술을 하라고 하지 하는 서운함도 토로하셨다. 나이가 들어서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 말이 할머니를 단단히 화나게 한 것 같았다.
토비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얼마 전 엄마는 다리가 불편해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서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나이가 들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약 먹는 거 말고 뭘 더 할 수 있는지 물어도, 어떤 검사를 더 해야 하느냐고 물어도, 의사는 별 대답도 없고 시큰둥하다고 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나이 든 환자는 대충 봐준다고, 다음에는 의사 만날 때 같이 가자고 하셨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다’ 는 말이 제일 속상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도 토비 할머니에게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드신 분이니 질병에 대한 이해가 어려울 거라 짐작하거나 전문적인 케어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노령 동물을 치료하면 ‘뾰족한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치료를 하더라도 불편한 걸 말끔히 해결하기 힘들고, 마취에 대한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이가 많으니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통을 이고 지고 살 이유는 없으니까. 수의사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토비에게 고통을 줄 바엔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안구적출 수술을 실시해 고통을 줄이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토비 할머니도 엄마도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계실 거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그들에게 작은 노력도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커진 거다.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뾰족한 수가 아니어도 말이다. 최선을 다해보고 나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해도 늦지 않다.
나이가 들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스스로 느낄 만큼 체력적으로 뒤처진다.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도 않고 몸에서 냄새도 난다. 뭘 먹어도 거뜬하던 소화기관이 마음만큼 제 기능을 못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열정을 소진한 채 기꺼이 활동을 줄여간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 불꽃이 꺼지는 것은 아니다.
토비 할머니에게 집에서 매일 해줄 수 있는 소독이나 귀 청소, 약물 목욕 방법을 꼼꼼하게 적어서 설명을 드리고 체크하기로 했다. 토비 할머니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돌봤다. 소독도 잘하고, 귀 청소도 잘하고, 약물 목욕도 잘 챙겼다.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즐거워하셨다. 아이들의 컨디션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당신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기쁨도 컸던 것 아니었을까.
아직 해결할 문제가 있긴 하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다이어트 식단에 매번 실패하시는 토비 할머니와의 담판이다. 이 문제는 정말 어쩔 수 없을까.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