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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노령견이 아니라 ‘노련견’이에요

등록 2018-02-05 11:00수정 2018-02-06 11:15

[애니멀피플] 박정윤의 멍냥멍냥
자기보다 먼저 떠날 노령견
사람들은 입양을 꺼리지만
그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조용하고 집중력 좋은 베테랑들
번식장 개들일수록 작고 예쁜 경우가 많다. 분양이 잘 되려면 새끼의 외모가 예뻐야 하기 때문일까.
번식장 개들일수록 작고 예쁜 경우가 많다. 분양이 잘 되려면 새끼의 외모가 예뻐야 하기 때문일까.
병원에 하숙생이 생겼다. 몇달 전 동물단체가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한 강아지 77마리 가운데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아이들을 먼저 병원으로 이송했고, 이들은 병원의 임시 하숙생이 되었다.

그중 한 아이는 열 살 정도로 보였다. 번식장에서 소위 말하는 ‘폐견’으로 취급되는 노령견이었다. ‘포원’이라는 임시 이름을 가진 그 아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병원에 오는 보호자들은 포원이의 작고 귀여운 외모에 반하고, 나이가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 함께 온 임시 하숙생 포메라니안 5마리 가운데 포원이가 눈에 띌 만큼 예뻤지만, 다른 4마리가 모두 입양을 가는 동안 포원이는 혼자 남았다. 포원이를 보면서 얼마 전까지 임시 하숙생이던 ‘꼬맹이’가 떠올랐다.

꼬맹이도 나이가 제법 있는 강아지였다. 보호자와 단둘이 살았다고 했다. 보호자가 말기 암으로 요양원에 가게 되면서 동물단체로 들어갔다. 혼자서만 사랑을 받아오던 그 녀석은 단체생활에 적응을 못 했다. 병원에서 임시보호를 받는 꼬맹이는 혼자만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선생님들의 무릎은 온전히 꼬맹이 차지여야 해서 다른 개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고, 그러다 종종 싸움도 했다. 작은 강아지이다 보니 멋모르고 덤빈 덩치 큰 강아지에게는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다 발에 차이기 일쑤였다.

몇달이 지나면서 꼬맹이는 처음의 호기를 잃었다. 자기를 안아달라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혼자 구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정에서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보호소에 오는 다른 강아지들처럼 체념하고 좌절하고 그렇게 이해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여가는 모습이 측은했다. 이쁘지만 품종견도 아니고 나이가 있다 보니 가족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 안쓰러웠다.

구조된 포원이, 보호자를 잃은 꼬맹이, 버려진 유기견 외에도 가족을 기다리는 나이 든 개들은 많다. 맹인안내견, 마약탐지견, 군견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하던 개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위해 헌신한 동물들이 나이가 들어 그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쓸쓸하게 버려지거나 잊히는 경우도 많다.

올리브동물병원에 온 포원이(앞). 안내데스크 안쪽에는 아이들이 쉬는 비밀 공간이 있는데, 포원이가 병원에 살고 있는 견이와 함께 있다.
올리브동물병원에 온 포원이(앞). 안내데스크 안쪽에는 아이들이 쉬는 비밀 공간이 있는데, 포원이가 병원에 살고 있는 견이와 함께 있다.
사실 나이가 든 개들이 보호소에 오는 이유 중 가장 흔한 것은 보호자가 사망한 경우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보호자가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약한 상태에서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안타까운 건 나이가 든 아이들의 재입양 기회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흔히 8살이 넘은 개들을 노령견으로 분류한다. 8살은 사람의 나이로는 40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이다. 노령이라기엔 이르다. 10살은 56살에서 60살 정도이다. 반려동물의 평균수명도 늘었다. 관리를 잘하면 살아온 시간만큼 함께 지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역으로 생각했을 때, 그 시간만큼 남은 생을 보호소에서 남아 있는 건 더욱 가슴 아프다.

구조 당시의 포원이(아래 왼쪽)
구조 당시의 포원이(아래 왼쪽)
운이 좋게도 꼬맹이는 새 가족을 만났다. 작년에 14살 다롱이를 떠나보낸 보호자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다고 병원에 떡을 해서 오셨다가 꼬맹이를 만나게 되고, 나이가 많은 걸 몇달간 고민하시던 보호자와 가족은 마음이 닿은 꼬맹이를 식구로 맞기로 결심했다. 가자마자 하루 만에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꼬맹이는 지금은 둘도 없는 막둥이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꼬맹이의 새 가족이 종종 보내주는 안부 문자 속 사진 속 꼬맹이는 늘 웃는 표정이다.

나이가 든 개를 입양하는 데 동정심만 필요한 건 아니다. 분명한 장점이 있다. 성격이나 성향 파악이 쉽고, 사람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강아지를 키우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 용이하다.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좋아서 오히려 교육이나 놀이를 함께하기에 수월하다. 또, 보호자의 성향이 집안에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면 노령견만큼 궁합이 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든 개를 입양하는 건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슬픈 경험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얼마나 함께 사느냐는 아무도 모른다. 나이가 든 개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건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첫번째 가족이 아닌 마지막 가족이 되어보면 어떨까.

글·사진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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