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전찬한의 개이득 수업 - 흥분한 개 가라앉히기
다니엘 헤니의 ‘로스코’처럼
의젓한 대형견이 되려면
스스로 앉고 엎드리게 하라
개고기 될 뻔한 리트리버의 새끼
엎드려 진정하기 시킨 뒤
사료 뺏기지 않고 기다리며
식욕·소유욕 참는 법 배웠다
미국 입양을 앞둔 리트리버 닐과 네빈(앞의 노란 목줄)이 21일 오전 서울 청담동 이리온동물병원에서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근 방송프로그램에서 연예인만큼 화제가 된 대형견이 있다. 배우 다니엘 헤니의 반려견 ‘로스코’다. 로스코가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돼 미국으로 넘어가 만난 새 가족이 (무려) 다니엘 헤니다. 편집의 결과겠지만, 사람보다 의젓한 로스코의 몸짓에 매력을 느낀 시청자가 많았다. 로스코는 개가 사람과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예절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은 대형견이 살기에 좋지 않은 나라다. 개들이 뛰어놀 녹지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람들은 생활 공간이 한 뼘이라도 더 넓어지길 바라며 살아가는데, 개에게 내줄 땅 같은 건 애초에 없다. 개들이 함께 눕기에는 도시는, 나의 방은 너무나도 좁다. 도시를 떠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시골에 사는 대형견은 개장수를 만날 확률이 도시 개들보다 높다. 체고 40㎝ 이상의 개에게 입마개를 씌울 정책도 한때 추진되었다. 대형견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이봐, 너무한 것 아냐”라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는 대형견이 있다.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동물병원 교육실에는 생후 4개월 된 골든리트리버 형제 ‘닐’과 ‘네빈’이 찾아왔다. 닐과 네빈의 부모는 경상북도 고령에서 살다 개장수에게 각각 5만원씩 10만원에 팔렸다. 2004년부터 유기견 구조 활동을 해온 ‘보더콜리구조협회’의 권혁명 대표가 이 두 마리를 다시 사들였고, 입양처를 찾던 중 지난해 12월 닐과 네빈 등 새끼 8마리가 태어났다.
네빈은 흥분해서 놀다 교육실에서 대변도 보았다. 21일 오전 서울 청담동 이리온동물병원에서 닐과 네빈이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입양을 보내기 쉽지 않았다. 권 대표는 미국의 ‘오리건 골든 본드 구조’ 기관을 통해 새끼들이 새 가족을 만나도록 해외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임시보호처를 찾았고, 임시보호처에서 올해 6월까지 새끼들을 키워주는 중이다. 처음부터 미국 기관에서는 개들의 이름을 이국적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8마리 중 1마리가 먼저 미국으로 떠났고 남은 7마리가 한국에 남아 ‘사회화 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개가 사람을 물면 손해배상 비용이 많이 들어요. 일단 사람을 물지 않아야 하고, 음식을 먹을 때 기다릴 줄 알아야죠. 이 두 가지는 해야 하니까 기본적인 교육은 다 받고 간다고 봐야 하겠죠.”
이날 수업을 참관한 미국 단체 관계자가 말했다. 그는 만약에 개가 사람을 물면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래도 또 물면 안락사를 시켜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생후 4개월 만에 유치원생의 몸무게인 16~17㎏만큼 훌쩍 자란 활달하다 못해 힘센 강아지들은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닐은 식탐이 많았다. 산책하러 갈 때 차분히 걷지 못하고, 물건에 대한 소유욕도 강한 편이었다. 이날 닐이 배워야 하는 것은 ‘진정하기’였다. 전찬한 이리온동물병원 교육이사이자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 애완동물학부 훈련 전임교수는 흥분한 닐에게 허리를 굽혀 한두알씩 사료를 손으로 주면서 닐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렸다.
“흥분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하면 닐에게 시간을 주세요. 닐은 자기가 엉덩이를 바닥에 대면 좋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아요. 똑똑하네요.”
닐과 네빈은 유기견 부모가 낳은 새끼 8마리 중 2마리의 형제다. 김정효 기자
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김정효 기자
전 이사는 닐이 팔을 굽혀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자 ‘옳지, 옳지’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로 닐도 자신이 엎드려 가만히 있을 때 반려인이 기뻐한다는 사실을 안 걸까. 하지만 개들의 집중력은 금세 바닥이 난다. 전 이사는 자꾸 일어나려고 하는 닐의 코앞으로 사료를 갖다 댔고 닐은 정신이 홀린 듯 사료 핥기에 집중했다. 전 이사가 손을 바닥까지 내렸다.
“이때 사료를 뺏기지 않는 게 중요해요. 닐이 사료 냄새를 맡으며 다시 천천히 아래로 몸을 숙이게 합니다. ‘앉아, 엎드려’ 같은 구호를 여러 번 반복하지 마세요. 개들이 헷갈립니다.”
전 이사가 손에 쥐고 있는 사료를 기어코 ‘뽑아’ 먹은 닐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전 이사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닐은 스스로 엉덩이를 대고 팔을 굽혀 엎드렸다. 그제야 전 이사가 닐을 쓰다듬으며 사료를 주었다. 임시보호한 개만 12마리라는 프리랜서 박지현(37)씨는 “교육 잘못 받고 가면 안락사당할 수도 있으니 기본 교육을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네빈은 함께 사는 다른 개와 잘 싸우는 게 걱정이다. 임시보호자 김수진(37)씨는 네빈이 “착하고 성격 좋은 개”라는 걸 알지만 네빈도 예절 교육이 필요했다. 이날 네빈은 오랜만에 만난 형제 닐을 보고 교육실에서 한참을 뛰어노느라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권 대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골든리트리버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물어보면 보더콜리는 80%가 주인을 다시 만나는데 리트리버는 잘 안 찾아가요. 미국 유기견 보호소에는 핏불테리어종은 많은데 골든리트리버는 적다고 하고요. 개들에게는 국경이 없어요. 더 좋은 대접 받을 수 있는 나라로 보내는 거죠.”
닐과 네빈, 그리고 형제자매들은 예방접종을 마치고 오는 6월 초께 미국으로 간다. 출국 전까지 기본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닐과 네빈이 ‘로스코’처럼 사랑받는 의젓한 개가 될 수 있기를.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