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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동네 길고양이를 어떡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등록 2018-09-25 12:00수정 2018-09-25 13:07

[애니멀피플] 전채은의 나의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미래의 ‘동물원 호통 할머니’가 말하길 동물 복지란
이상 추구가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무실 앞으로 늘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있었다. 멀찌감치 밥을 놔주면 먹고 쏜살같이 도망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안가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 집사가 되어 달란 뜻인가? 그러다 어느 날 아기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제 세 마리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밥을 많이 담아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기까지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해가 저물어도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주변 다른 고양이들에게 영역 다툼에서 밀려 아기들과 함께 머물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스를 집 앞에 놔두었다. 혹시라도 밤에 잘 곳이 없다면, 그런데….

아침에 사무실 앞에 와보니 박스 안에서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어찌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당장 할 일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두꺼운 재질로 된 집을 만들어주는 것.

동네에 길고양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본인의 판단에 따라 실천하라고 조언한다. 동물 관련 일에는 완성이란 없다.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동물원에 가도 나쁜 부분이 있다. 아무리 길고양이 모두에게 잘해주려고 해도 결국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성벽에 사람은 올라가면 안 되지만 고양이는 된다.
성벽에 사람은 올라가면 안 되지만 고양이는 된다.
최선의 이상적인 상황을 설정하면,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 중 이해관계에 따라 편리한 것을 택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길고양이에게 완전한 해방이 있을까. 동물원 동물의 완벽한 해방이란 무엇일까. 실험기관에서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좋은 마취제를 살 것인가, 수혼제를 할 것이냐 했을 때 우리가 기준을 주지 않으면 기관은 수혼제를 선택할 것이다. 전자의 목적은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고, 후자는 연구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우선 아닌가. 동물원의 모든 동물이 자유를 찾는 순간은 생태계의 완전한 복원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동물원 동물의 완전 해방을 부르짖는다면 열악한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 목표 지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최소한의 합의점마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계단조차 오르지 못한다.

길고양이 모두가 완벽하게 행복하게 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현재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복지란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어놓고 애매한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존중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며 실천해야 한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복지란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길고양이는 학대하면 안 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당신은 밥만 줄 수 있나 아니면 구조하여 치료도 할 수 있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다른 사람이 간섭해선 안 된다. 야생동물이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 있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함부로 만지거나 먹이 던지게 하지 말아야 하며 놀림감이 되는 공연 따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동물을 위한 행동 사무실 앞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고양이.
동물을 위한 행동 사무실 앞에서 밥을 먹기 시작한 고양이.
사무실 바로 옆에는 한성성곽이 있다. 간혹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성벽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양도성은 사적 제 10호다. 문화재는 훼손해선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방송을 해도 누군가는 성곽에 오를 수도 있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 “성벽은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올라가지 마세요.” 시민 정신의 발휘가 필요하다.

동물원에 가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소리 지르는 사람, 뭔가를 던지는 사람,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주는 사람. 모욕하는 말을 하는 사람. 나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동물을 위하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다. 은퇴하면 매일 지팡이를 짚고 동물원에 갈 거다. 그리고 “코끼리 똥 싸요, 더러워요”라고 말하는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를 가만히 두는 부모들에게 호통치며 야단칠 거다. “모든 생물은 배설한다. 당신도 똥을 싼다. 코끼리는 당신에게 모욕을 받아야 할 저열한 존재가 아니다. 소중한 생명이다.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 만약 나와 연락이 끊긴다면 독자들이여. SNS에서 ‘동물원에서 호통치는 화제의 할머니’를 검색하라.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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