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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봉 없어요?”…도살 흔적을 찾아라

등록 2020-06-29 11:04수정 2020-06-29 11:11

[애니멀피플] ‘전기도살 불법’ 대법원 판결 뒤 개농장 단속 현장
경기 시흥의 한 개농장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개를 도살하는 작업장으로 보이는 곳에는 쓰레기 등을 불에 태운 흔적이 있었지만, 개털이나 내장 등 개를 도살한 증거는 없었다.
경기 시흥의 한 개농장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개를 도살하는 작업장으로 보이는 곳에는 쓰레기 등을 불에 태운 흔적이 있었지만, 개털이나 내장 등 개를 도살한 증거는 없었다.

“개를 도살했다는 민원이 들어왔어요. 현장을 봐도 되겠습니까?”

6월12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한 대로변의 식당.

‘쌩쌩’하는 차 소리가 멎는 찰나의 순간,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이곳에서 식당을 하며 개를 기르는 농장주를 찾았다.

지난 4월 대법원은 개를 전기로 도살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보는 판결을 내렸다. 전기봉을 이용해 개를 도살하여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아무개(68)씨의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육견업계를 뒤흔들 만한 판결이었다.

왜냐하면, 개농장주나 도축·도매 업자들은 그간 전기봉을 이용하여 개를 도살해왔고, 전기봉이 없으면 비용면에서 이를 대체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판례를 적용해 개농장 단속을 벌이고 있다.

“아이고, 개 끝났어요.”

더는 개를 잡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농장주는 땅이 택지지구로 지정돼, 토지 수용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개농장 좀 볼게요.”

특사경 5명이 식당 뒤 개농장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세워진 뜬장(철제 막대로 바닥을 엮어놓은 상자)에는 털이 길어 눈을 덮은 개, 새끼를 데리고 있는 진돗개 등 40~50마리가 있었다.

“전기봉 없어요?”

“없어요. 나는 전기봉 쓸 줄도 모르고, 고무줄 묶어서 썼는데, 지금은 안 한 지 오래됐어요.”

개농장 후미진 구석에 작업장 같은 곳이 있었다. 무언가를 태우고 남은 재가 있었고, 1m 길이의 토치와 긴 줄이 여럿 걸려 있었다. 도살한 개를 태운 흔적 같았지만, 농장주는 “비닐을 태운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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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적인 도살 도구나 흔적 있어야 처벌

이날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전기봉’을 찾았다. 그동안 개농장이나 도매업자들은 쇠꼬챙이 막대에 220V 전기를 연결한 이 도구를 개의 입에 대고 ‘지지는’ 것으로 개를 도살해왔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 정도로 개는 의식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느끼며 잔인하게 죽어갈 수 있다. 그것이 대법원이 전기도살을 동물학대로 본 이유다. 박경서 수사7팀장이 말했다.

“단속을 나오면 먼저 도살 도구가 있는지 봅니다. 아니면 죽은 흔적을 찾아요. 개털이나 내장 같은 부산물이 있어야 해요. 현재로선 증거는 안 보입니다.”

경기 시흥의 한 개농장의 입구에서 개들이 앉아 있다. 개집 뒤로 도살 직전의 개를 감금해 이동하는 뜬장이 놓여 있다.
경기 시흥의 한 개농장의 입구에서 개들이 앉아 있다. 개집 뒤로 도살 직전의 개를 감금해 이동하는 뜬장이 놓여 있다.

개를 기르고 도살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개 사육, 도살 과정 중 동물보호법이나 가축분뇨관리법 등의 불법적인 요소가 있어야 입건이 가능하다.

동물보호법의 경우, 전기도살법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 수사관들이 가장 유심하게 본 것은 ‘다른 개가 보는 앞에서 개를 도살하는 행위’였다. 이 또한 동물학대로 처벌 대상인데, 특사경이 개를 도살하는 작업장의 위치를 살피니까, 일부 개농장에서는 가림막을 갖다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지영 수사5팀장은 “‘다른 개들 보는 앞에서 도살했냐’고 물으면, 옆에 있는 가림막을 보여주면서 ‘이거 다 치고 했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개농장의 불법 행위에 대한 경기도 특사경의 단속이 강화되자, 개농장주들은 서로 연락하며 단속을 대비하는 지침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수사관들은 전했다.

한국은 개에 관해서 두 개의 문화가 존재한다. 하나의 문화에서는 개를 가족처럼 끔찍이 돌보고, 다른 문화에서는 아무렇게나 기르다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의 법과 판례는 이러한 개고기 공급 시스템에 갈수록 호의적이지 않다. 조사에 나섰던 한 경찰이 말했다.

“대법원 판결에 감춰진 뜻은 이제 (도살)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법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시흥/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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