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물보호단체 행강, 동물자유연대는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이번 판례를 활용하여 불법적인 개 도살을 엄단하라고 촉구했다. 카라 제공
식용견을 기르는 개농장에는 두 가지 사육장치가 있다. 하나는 ‘뜬장’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봉’이다.
뜬장은 철체 막대를 엮어 만든 좁은 사육 상자다. 평생 이곳에 갇혀 사는 개는 불균등한 바닥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의 관절염을 앓지만, 농장주 입장에서는 막대 사이로 배설물이 떨어져 아주 효율적이다.
전기봉은 도살 때 사용되는 기구다. 쇠꼬챙이 같은 막대에 가정용 전기를 연결해 개를 ‘지진다’. 개는 기절한 것처럼 보이고, 도살이 시작된다. 하지만 개가 의식을 완전히 잃었는지, 그러함으로써 고통을 최소화했는지가 문제이기 때문에, 전기도살법(전살법)은 개고기 찬반 논쟁의 첨예한 전선이 되어왔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8조1항)를 동물학대로 보고 처벌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전기봉을 이용한 개 도살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동물학대’ 행위라면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아무개씨(68)의 유죄를 확정했다. 이씨는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연간 30마리의 개를 전기봉으로 죽인 혐의다.
동물보호단체는 일제히 환영했다. 이 판결은 개고기의 생산·도살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관련 산업에 일정 부분 타격을 끼칠 전망이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공동대표를 이날 인터뷰했다.
-다섯 번째 재판이었다.
“이씨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났다. 그런데 대법원이 전기도살이 동물학대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고, 고등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이 재상고했는데,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전기도살이 어떤 면에서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봤나?
“전기봉으로 개를 도살할 때, 개가 고통을 느끼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재판에서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증언했다. 전기충격을 가하면, 개가 앞다리 뒷다리를 쭉 뻗고 가만히 있지만, 그것이 항상 의식 소실을 불러온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검사가 입증했어야 한다. 하지만 검사들이 열심히 안 한다. 수사 과정에서 전기봉을 압수해 증거로 내놓지도 않고 서둘러 변론을 종결해버리기도 하고… 동물권단체 카라가 2심 때 해당 검사를 직무유기로 고소하기도 했었다.”
-개를 어떻게 도살하는 건가?
“전기봉을 개의 주둥이에 대어 기절시킨다. 전기봉은 시제품이 아니다. 쇠막대기에 나무 각목을 지지대로 대고 절연테이프로 감아 만든 조잡한 도구다. 여기에 스위치를 달아 전기가 흐르게 한다. 이번 재판에서 피고인은 380볼트(V)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성남 모란시장 등 대부분의 경우 220볼트 가정용 전기를 끌어다 쓴다.”
2017년 9월 전국 개농장주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개고기 합법화’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대법원의 ‘개 전기도살’ 불법 판결로 개농장주들은 식용견 사육 및 개고기 유통에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개농장주나 판매업체들은 도살이 힘들어지겠다.
“대다수가 전기도살법을 이용하고 있다.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도 개 도살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률 조항이라고 한다. 이제 전기도살도 잔인한 방법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다른 잔인하지 않은 방법을 고안하지 않는 이상 동물보호법 위반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식용견 산업에 미치는 여파는?
“첫째, 수사기관이 개 도살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단속할 근거가 마련됐다. 둘째, 잔인하지 않은 방법으로 개를 도살할 방법이 법적으로 없다는 게 확인됐다. 이제 관련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동물보호법에 임의도살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어야 하고,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 따로 정하지 않는 가축의 경우 도살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