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사향제비나비-얼룩나방 짝짓기에 이어 금개구리-큰산개구리 이종교배 목격까지
자연 상태에서 벌어진 사향제비나비 수컷(왼쪽)과 얼룩나방 암컷의 짝짓기 모습.
2020년 7월 강원도 횡성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근처 숲에서 이상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겉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사향제비나비 수컷과 얼룩나방 암컷이 짝짓기 중이었다.
검은색과 오렌지빛 바탕색에 흰색 큰 무늬가 섞여 얼룩덜룩한 얼룩나방과 검은색 날개의 사향제비나비가 엉켜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영 부자연스럽다. 얼룩나방 암컷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사향제비나비 수컷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나방과 나비, 이놈들은 족보 자체가 완전히 달라 암수의 궁합이 맞지 않을 텐데 어떻게 짝을 맞추었는지 정말 헷갈리는 일이다.
짝짓기를 푼 뒤 얼룩나방 암컷이 8개의 알을 낳았고 알을 부화시켜 애벌레를 키워보니 얼룩나방 애벌레였다. 야단법석을 떨며 억지로 짝짓기를 했지만 사향제비나비의 정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비목 곤충 암컷의 배 안에는 수정낭이라 하여 짝짓기할 때마다 각각의 수컷 정자를 보관하는 주머니가 있는데, 사향제비나비 수컷과 짝짓기하기 전 이미 받아 놓은 얼룩나방 수컷의 정자만을 골라 수정시켰을 것이다. 새로운 종은 나오지 않았다.
사육 케이지에 낳은 얼룩나방 알(왼쪽)과 부화한 얼룩나방 애벌레.
사향제비나비 알(왼쪽)과 애벌레.
그런데 이상한 일은 또 일어났다. 지난 1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습지에서 이번엔 양서류가 종을 넘어선 짝짓기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직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는 겨울 한복판에 특별한, 아니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큰산개구리가 금개구리를 꽉 껴안고 있다. 때를 모르고 겨울 휴면에서 너무 일찍 깨어난 큰산개구리가 비몽사몽, 얼떨결에 자기와 똑 닮은 암컷이라 착각해 적극적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생김새만 보고 덥석 잡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서식지도, 월동 형태나 겨울 휴면에서 깨어나는 시간도 다른, 생리적 차이가 확연한 금개구리와 어떻게 눈이 맞았을까?
큰산개구리와 금개구리의 포접 모습.
생물학적 종이란 짝을 짓고 번식해서 자식을 낳는 생물 집단을 가리킨다. 종이 서로 다른 놈들끼리는 생식기 구조가 달라 짝짓기도 불가능하지만, 억지로 짝짓기를 해도 새끼를 낳을 수가 없다. 설사 낳는다 해도 번식력이 없어 대를 이어가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연 상태에서 전혀 다른 종의 암·수가 짝짓기를 했을까?
개구리속의 큰산개구리와 연못개구리속인 금개구리의 포접은 상대를 같은 종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개구리 종류는 눈앞에 보이는 상대면 무조건 껴안고 보는지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속(屬)은 물론 과(科)까지 다른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에게 전투적인 짝짓기를 시도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개는 개를 낳고 고양이는 고양이를 낳으므로 개구리도 개구리를 낳겠지만 큰산개구리와 금개구리의 이종교배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금개구리 알은 큰산개구리 정자로 수정이 될지, 수정이 일어난 이후 올챙이까지 발달할지, 아니면 발생 단계에서 죽을지, 발생 단계를 마치면 어떤 개구리 모습을 할지 모두 다 궁금하다. 물론 수정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말이다.
얼룩나방과 사향제비나비 짝짓기는 이러한 추론조차 힘들다. 각각의 종은 번식 시기나 행동, 암·수의 생식기 형태나 구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종교배를 막는다. 밤나방과의 얼룩나방과 호랑나비과의 사향제비나비는 멀어도 한참 먼, 나비와 나방인데, 이러한 종간 교배를 제한하는 생리적 장벽을 넘어 짝짓기하는 행동은 충격적이다. 물론 얼룩나방 암컷의 짝짓기 거부 행동이 계속되었고, 짝짓기 후 새로운 잡종은 나오지 않았지만 도대체 이러한 엽기적인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자연 선택의 한 방향인지 아니면 동물계의 특이한 존재인지 알 길이 없다.
독일 오스나브뤼크 동물원에 있는 북극곰과 회색곰의 잡종 피즐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후가 변해 서식지가 변화하면서 이종교배로 인한 새로운 잡종에 대한 보고는 꽤 오래됐다. 자연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북극곰(Ursus maritimus)과 회색곰(Ursus arctos horribilis)의 잡종인 피즐리가 있고, 연구소 내에서도 참개구리(Pelophylax nigromaculatus)와 금개구리(Pelophylax chosenicus)의 이종교배를 통해서 만들어진 잡종이 실제 목격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생산할 수 있다’라는 뜻을 지닌 속(Genus)에서 분리된 종이므로 억지로라도 궁합을 맞출 수 있지만, 나비와 나방, 큰산개구리와 금개구리처럼 생식적으로 분리된, 자연 집단의 이종교배는 자연의 무질서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참개구리와 금개구리의 잡종. 두 종은 모두 연못개구리속에 포함되는 종이다.
개발과 탐욕에 대한 성장 중독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기후위기와 외래종 도입 등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로 유발된 생태계 교란 때문에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자연의 역습이 두렵다.
▶홀로세곤충방송국 힙(HIB) 영상 ‘나비야! 네가 거기서 왜 나와?!‘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