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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0.45g 몸으로 8000㎞ 이동…3세대 걸쳐 북미 왕복하는 제왕나비

등록 2021-12-31 11:36수정 2021-12-31 11:53

[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0.45g 연약한 몸으로 8000㎞ 이동, 기생충과 질병 피하는 ‘거리 두기’ 전략
북미의 대표적인 나비인 제왕나비가 꿀을 빨고 있다.
북미의 대표적인 나비인 제왕나비가 꿀을 빨고 있다.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버리고, 편안하게 살던 곳을 뒤로 하고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길을 무턱대고 나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떠나야 살 수 있다면 떠나는 수밖에.

해가 짧아지고 추워지자 자기 체온으로 점점 추워지는 겨울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는 지금이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낀다.

왕사마귀의 월동 알집.
왕사마귀의 월동 알집.

겨울이 다가오면 체온 조절하기가 어려운 많은 생물은 바짝 긴장한다. 환경을 극복하지 못할 때는 철새처럼 이주 비행을 하거나 동굴 속으로, 땅속으로 피난처를 구해 숨 쉬지 않고 죽은 듯 겨울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체온 조절이 가능한 변온동물인 곤충은 광주기, 온도, 습도, 먹이 등 계절의 변동에 잘 적응된 생활 주기를 보인다. 휴면하거나 단순히 온도에 따라 잠깐 활동을 중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발생 시기도 조절한다. 심지어 혹한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육을 하는 붉은점모시나비도 있다.

월동 중인 긴꼬리제비나비 번데기.
월동 중인 긴꼬리제비나비 번데기.

한겨울에 발육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한겨울에 발육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그 자리에서 버티거나 발육하는 일반적인 월동 방법이 아닌, 이동하는 제왕나비는 그래서 곤충 세계에서는 특별하다. 불과 0.45g, 100.56㎜의 가냘픈 몸으로 북미 대륙 8000㎞를 왕복하다니, 경이로운 자연 현상이다.

제왕나비의 무게 측정. 핀과 받침대 무게를 빼면 0.45g이다.
제왕나비의 무게 측정. 핀과 받침대 무게를 빼면 0.45g이다.

따뜻한 곳을 찾아서 먹이를 구하러 철 따라 이동하는 철새는 익숙한 단어이지만 체온 조절이 가능한 곤충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행위는 단순히 추위를 피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이동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지역을 달리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토착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질병을 피하기 위한 최고의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에 도래하는 겨울 철새.
한반도에 도래하는 겨울 철새.

해가 짧아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면 캐나다 동부나 미국 동부에서 살던 제왕나비는 ‘이동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면서 남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멕시코로 이동하는 제왕나비들은 여름에 태어난 나비로 오직 멕시코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이동만을 위해 특화된, 체력적으로 강한 놈들이다. 이동 후 겨울까지 나므로 수명은 7~8개월 정도로, 이동하면서 번식하는 다른 시기의 나비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월동 중 물을 마시는 제왕나비.
월동 중 물을 마시는 제왕나비.

11월께 멕시코에 도착하여 겨울을 난 뒤 길을 되짚어 캐나다 동부나 미국 동부로 이동하면서 생식 기능이 발달하며, 번식을 시작한다. 그 자식들이 이동하며 잠시 기착하는 곳에서 번식하며 짧은 애벌레 시절을 보내고 어른 나비가 되면 다시 이동한다. 3세대에 걸친 번식과 이동을 하면서 한 차례 북미 대륙을 왕복하는 동안 제왕나비는 장소를 달리하며 할머니에서 손녀까지 대를 이어 번식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곤충과는 진화의 방향이 완전히 다른 제왕나비를 직접 관찰하고 싶은 열망으로 2011년 3월 24∼27일 동안 멕시코 미초아칸주 엘 로사리오(El Rosario)를 찾았다. 5개월간의 월동을 마치고 막 북상을 준비 중이었으므로 가장 많은 제왕나비가 모여 있었다.

약 1억5000만 마리의 나비가 주렁주렁 열린 열매처럼 전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이나 동시에 비행하면서 내는 날개 부딪히는 소리는 실제 눈앞에서 확인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자연 현상으로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나무에서 월동 중인 제왕나비 무리.
전나무에서 월동 중인 제왕나비 무리.

2년이 넘는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열고 잠그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제왕나비가 1만여년 전부터 해 오던 이주와 요즈음의 거리 두기가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거리 두기는 인간이나 환경의 건강을 지키는 데 널리 적용할 수 있는 유망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이주를 반복하며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제왕나비의 생존 전략이 현명해 보인다. 걱정은 이동 중에 머물며 번식하는 중간 기착지나 월동지의 서식 환경이 파괴되면서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미 지역 전체가 마음을 같이 하고 노력해야 그들을 보호하고 멋진 광경을 계속 볼 수 있을 텐데, 토착 종인 바이러스나 기생충은 피했지만 인간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 해가 간다. 내년에도 일상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아 시름도 깊고 답답한 세월이지만,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제왕나비의 경이롭고 위대한 여정을 보면서, 잠깐! 여유를 가져봐야 할 것 같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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